윤석열 정부가 출범 100일을 막 지나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우조선해야 하청노동자와 화물연대 노동자 파업을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했다고 자찬했다. 노동이 현실 수요에 맞춰 유연하게 공급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윤석열 정부 100일의 노동정책 평가를 들었다.

노동정책은 부재, 정책은 기업편향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

▲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
▲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소주성’과 같은 잘못된 경제정책을 폐기하고 경제기조를 민간중심·시장중심으로 정상화했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우조선해양 하청 파업사건과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건을 처리했다”고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을 평가했다.

대통령이 말한 경제·노동정책의 변화는 극단적인 친기업 정책이자 사회적 현안에 대한 무책임과 무능력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대우조선 하청과 화물연대 파업에 공권력 투입을 자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는 것은 사실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거나 공권력 투입을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수준의 노력만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두 가지 투쟁이 제기했던 근원적인 문제인 물가폭등, 경기호전에 따른 적정 노동소득의 보장, 다단계 원·하청 구조에 따른 착취체제의 제한과 정상적 노사교섭을 통한 근로조건 개선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최근의 하이트진로 투쟁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후속투쟁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 노력이 없는 조건에서 불가피하다. 두 사안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꾸자는 요구인데 대통령은 현상유지를 정부의 성과로 꼽았다는 점에서 노동정책의 부재, 기업편향 정책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노동정책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민간중심·시장중심의 노동시간·임금정책인 주 52시간 상한제의 무력화, 직무성과급제 도입이 올해 연말부터 본격 추진될 것이다. 정책의 기본방향은 이미 나와 있는 상황에서 세부 정책 설계와 사회적 논의를 빙자한 관변학자들의 들러리 서기라는 절차를 거치고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 극단적인 시장중심 임금정책인 최저임금의 차등적용, 무력화를 내년에 추진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정책 기조하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은 불가피하다. 화물연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처럼 사안별로 사회적 갈등이 반복되는 방식을 택할 것인지, 정부의 편법과 꼼수를 막을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특고·플랫폼 노동권 보장, 원청사용자성 인정, 손배·가압류 금지 등 담대한 노동기본권 확대 입법화를 추진할 것인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따뜻한 보수정부의 길 찾길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에 기대를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날로 심화되는 노동빈곤의 시기에 따뜻한 보수정부의 행보를 일부나마 보여주리라던 한 터럭의 기대마저 사라졌다. 고용노동부는 기업중심 경제살리기에 매진하는 경제부처 중 말단 부서로 전락했다. 허술한 법·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하청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의 파업에 법과 질서 운운하는 구시대적 행태도 여전했다. 그나마 엄포만 놓고 절박한 생존권 요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어정쩡하나마 타협을 통해 봉합한 점을 잘한 일로 꼽을 정도다.

예상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5.0%의 최저임금 인상, 엘리트주의적 발상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출범, 노동시장 개혁의제를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간 연장책으로 좁혀 버린 우물 안 정책 청사진 등 차라리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하는 앞으로 남은 5년이 걱정이다.

기업중심 경제위기 돌파는 대중빈곤을 희생으로 한 위기 타개책일 뿐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30년을 반면교사로 삼고 독일 보수정부인 메크켈 정부가 하르츠 개혁 이후 노동시장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법정 최저임금 도입 등 따듯한 보수정부의 모습을 보인 것을 조금이나마 본받기 바란다.

 

노동자 권리 행사에만 엄격한 ‘법과 원칙’
최정혁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부장

최정혁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부장
최정혁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부장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노동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노동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등 재벌 대기업들의 민원 해결에만 애쓰는 모양새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법과 원칙’은 대우조선해양 하청 파업과 화물연대 운송거부 등 노동계의 정당한 권리 행사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자본을 무기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겨운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무기로 목을 옥죄고 있다. 법과 원칙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어느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 부재도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경제 관련 단체와 대표를 13차례 만나는 동안 노동계와는 단 한 번의 만남도 가지지 않았다. 아니 소통조차 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위원장도 임명하지 않고 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만들어 말로는 노동개혁이지만 노동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노동자의 생명줄인 노동시간과 임금을 논의하는 이곳에도 노동은 없다. 이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말한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이중구조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은 재계의 소원수리 해결만을 의미하는 것 같다. “방만하고 비대화된 공공기관을 핵심기능 위주로 재편하고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제고하겠다”는 말 역시 민영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목적은 수익 창출보다는 질 좋은 공공서비스 제공이다. 자산을 매각해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겠다고 하면서 법인세를 인하해 재정수입을 악화시키는 것 또한 모순이다.

이제 출발선을 막 떠난 윤석열 대통령이 결승선을 통과할 때는 노동계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의 박수를 받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 첫걸음은 노동에 대한 존중과 노동계와 대화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노동정책, 규제로만 보는 편향된 시각 바로잡아야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제가 늘 강조했다시피 정부의 중요한 역할은 민간이 더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것입니다.”(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시간이나 노동안전 관련 규제를 그저 기업 경영 방해요소로 치부한다는 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해고사유 확대와 취업규칙 변경 절차 개선, 기간제·파견 활용범위 확대,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 파업시 대체근로 금지조항 개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개선, 임금피크제 확대,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등을 ‘덩어리 규제’로 규정하고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추진하는 과제가 아니라 건의받은 과제를 정리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출범 전부터 친기업·반노동 기조 아래 각종 규제완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터라 파장이 적지 않다. 대선공약부터 국정과제, 그리고 노동정책을 발표하는 모든 과정에서 민간기업의 투자와 성장 방해 요소로 노동정책을 보는 윤석열 정부의 편향된 인식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킬 무분별한 규제완화 시도는 중단돼야 할 것이다.

“노사 문제 역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의 파업 사건과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건을 처리했습니다.”(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윤석열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빌미로 재벌 총수에 대한 면죄부를 남발하고, 경제형벌에 대한 행정제재 전환, 형량 합리화 등을 추진하면서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에는 엄정한 법 집행을 외쳤다. 경제사범을 솜방망이 처벌하고,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몰아간다고 경제가 활성화될 리 없다. 오히려 노동자의 파업을 초래하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불공정한 하도급 구조를 면밀하게 살펴, 우리 경제의 앞길을 막는 각종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아야 윤석열 대통령이 원하는 경제 활성화를 이룰 수 있다. 원칙과 필요한 규제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의 권리마저도 그저 도려내야 할 규제로 치부한 채 반헌법적 노동정책마저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규제완화는 가히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뽑기’, 박근혜 정부의 ‘규제 기요틴(guillotine·단두대)’의 재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열심히 전봇대를 뽑고 규제를 토막 낸 결과가 무엇인지 윤석열 정부는 돌아봐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평등 양극화를 심화시킬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차별 없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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