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두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삼양사가 2015년 저성과자 제도를 도입한 뒤 한 직원이 네 차례나 저성과자에 선정되는 일이 발생했다. 저성과자에 선정된 이는 상사의 묵인 아래 이뤄진 중앙연구소 안 다단계 판매 행위에 문제제기를 하던 사람이었다. 연구소 내 따돌림은 시작됐고, 상사와 동료가 다단계 판매 문제로 징계를 받은 해인 2016년 처음 저성과자에 선정됐다.

삼양사 사례에는 직장내 괴롭힘 법제의 미비와 불합리한 저성과자 프로그램이 모두 영향을 미쳤다. 법제의 미비와 삼양사의 불합리한 저성과자 선정 두 가지 문제를 살펴본다.

괴롭힘 자체에 대한 처벌이 없다는 것은 여러 차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걸림돌 중 하나는 명확성 원칙 위반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나 판례 집적으로 ‘괴롭힘’에 대한 해석이 가능해지고 있어 명확성 원칙 위반의 위험성은 낮아지고 있다. 반면 괴롭힘은 협박이나 모욕 같은 범죄에 비해 피해나 행위태양이 가볍지 않아 도입 필요성이 높다. 괴롭힘 자체에 대한 처벌규정 도입이 필요하다.

직장내 괴롭힘 제도는 현재 사용자의 조치에 기대고 있다. 실무상 괴롭힘 사건을 고용노동부에 진정하면 노동부는 (가해자가 ‘사장’이 아니면) 사용자에게 조사를 지시한다. 그리고 노동부에 진정하지 않으면 피해자는 사용자에게 신고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용자는 ‘괴롭힘을 가할 힘이 있는 사내 권력자’를 ‘괴롭힘 피해자’에 비해 우대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처럼 ‘엄석대’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은 어렵고 피해자의 호소를 묵살하는 것은 용이한 법이다. 괴롭힘 관련 법제는 기대할 수 없는 ‘사용자의 의지’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괴롭힘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규정이 없고, 노동부가 직접 조사를 하지 않기에 삼양사 사건 당사자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았다. 당사자는 한편으로 사용자에게 괴롭힘이 있다는 취지로 신고하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부에 사용자가 괴롭힘이 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진정을 했다. 사용자는 괴롭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용자로서 부담하는 책임을 부정해야 하기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노동부는 사용자에게 적절히 조사하라는 취지의 시정지시를 내렸다. 노동부의 권한을 발휘한 당연한 결과였다. 사용자는 ‘적절히 조사’해 괴롭힘이 없다는 결론을 재차 내렸다. 실질적인 판단은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고, 괴롭힘은 여전히 존재한다.

삼양사 사례의 경우 괴롭힘의 수단으로 저성과자 프로그램이 사용됐다. 저성과자 프로그램의 합리성은 일반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 그리고 합리성의 정도는 부작용의 정도와 정확히 반비례한다. 삼양사 사례의 경우 저성과자 선정이 괴롭힘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선정에 합리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첫째, 저성과자 선정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다. 삼양사의 기준에는 ‘삼양 가치’ ‘내외평판’, ‘내외 영향’ 같은 ‘사내 정치’에 관한 항목들이 많다. 나아가 ‘거래처’라는 것이 없는 연구직 노동자에 대해 ‘고객 평판’이나 ‘거래처의 신뢰도’가 낮은 평가점수의 근거가 됐다. 이와 같은 점은 실제 ‘성과’가 아닌 다른 것이 저성과자 선정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 당사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사내에 유행하던 ‘다단계’ 가입 거절과 함께 시작됐다는 점은 불합리가 괴롭힘을 가능하게 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둘째, 평가 절차도 합리적이지 않다. 삼양사는 평가자들이 심의자료를 만들고 심의회의에서 같은 심의자료를 통해 평가를 확정하도록 했다. 평가 오류를 차단할 수단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셋째, 삼양사는 강제로 특정 비율을 저성과자로 선정하게 했다. 법원(서울행법 2004. 12. 12. 28. 선고 2003구합39306 판결)에 따를 때 특정 비율을 정해 놓은 기준은 그 효력이 없다.

넷째, 허술한 저성과자 선정 기준조차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선정 기준에 따르면 피드백과 등급조정회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 같은 절차들은 이뤄지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이뤄졌다. 동료들 사이에서 평가는 평가기간이 시작된 후 3개월 정도에(따라서 아직 평가기간이 9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 이뤄지고 확정될 정도로 허술하게 했다.

삼양사는 이와 같은 합리적이지 않은 기준을 두어 저성과자 프로그램이 사적 괴롭힘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더 나아가 저성과자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겪게 했다.

괴롭힘 법제의 수정이 필요하다. 처벌규정을 도입하고, 사용자의 조치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 노동부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인력 확충 역시 고려해야 한다.

저성과자 선정을 통한 괴롭힘은 앞으로도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성과자 선정을 통한 괴롭힘은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 평가가 이뤄진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 적절한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 저성과자 선정 기준의 유효성과 저성과자 선정을 통한 괴롭힘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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