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국비지원 IT학원을 다녔어요. 첫 직장은 학원에서 알선한 업체인데 사장 포함 다섯 명이 안 됐고 실제 개발에 필요한 장비도 하나 없는 소위 보도방(직업소개소)이었어요. 서류상으로는 파트타임으로 고용됐지만 프로젝트에 투입하면 금액을 맞춰 준다고 하더군요. 첫 업무로 증권사 개발업무에 투입됐는데 저도 모르는 새 사립대를 졸업한 3년차 경력직으로 뻥튀기돼 있었어요. 회사는 제가 업무를 하나도 가르치거나 도와주지 않았고 실질적인 지휘감독은 증권사 관리자에게 받았어요. 주 80시간을 일해도 업무를 소화할 수 없었죠.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두 달 후 증권사가 인력교체를 요구했는데 회사에서는 제 탓이라며 새로운 사람을 구할 때까지 무급으로 일하라며 급여도 주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돈을 받고 정리하고 싶지만 노동청과 노동위원회에서도 프리랜서 신분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들었어요.”

1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나온 소프트웨어 프리랜서 노동자의 현장증언이다. 이날 윤미향 무소속 의원, 이수진·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보경제연맹(위원장 장진희)은 ‘SW프리랜서 불법파견 실태와 노동권 사각지대 해소 방안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장진희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IT 강국을 만들겠다며 100만 디지털 산업인력 양성을 목표로 전국 초중고에서 코딩교육을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소프트웨어 인력난은 일할 노동자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일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소프트웨어 프리랜서 개발자 320명의 응답과 11명을 심층면접조사한 결과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발주처(갑)와 원청(을)을 제외한 하청(병), 재하청(정), 재재하청(무기경신)에서 일한 경우가 전체의 70.6%였다. 면접조사에서 8~9단계 재재하청에서 일한 경우까지 확인됐는데 자신이 어느 위치의 하청업체인지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신석진 국민입법센터 운영위원은 “소프트웨어 프리랜서들은 하청업체가 체결한 하도급 형태로 일하지만 실질은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이 매우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발주기관(갑)과 원청업체(을)를 제외한 “재하청업체에 고용(계약)돼 일했다”고 응답한 198명에게 ‘상급하청 업무지휘·명령·감독을 받은 경험’을 물었더니 57.1%는 ‘매번 경험’, 21.7%는 ‘가끔 경험’한다고 응답했다.

또 78.6%는 “어쩔 수 없이 허위 경력부풀리기에 응했다”고 답했는데 이를 요구한 쪽은 구직플랫폼(인력파견업체) 39.9%, 온라인 중개사이트 30%, 지인 21.1% 순으로 비중이 높았다. 소프트웨어 프리랜서들은 평균 44.1시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적게는 주 24시간, 많게는 주 90시간을 일해 편차가 컸다. 2명 중 1명꼴로 “월평균 5.4일 야간근무를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87%는 야간근무수당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이주희 변호사(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는 “모호한 경계에 있는 소프트웨어 프리랜서 노동자에게 파견근로자 지위를 부여해 노동부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을 가진 사업주로부터 노동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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