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최근 CJ대한통운은 올초 본사 점거농성을 한 전국택배노조 조합원들을 상대로 2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노조는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원청에 대화를 요구했지만 CJ대한통운은 직접적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화를 끝내 거부했다. 원청이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서 사태는 강대강 국면으로 치닫고 소송전으로 귀결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앞서 CJ대한통운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두 건의 손배소송에서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CJ대한통운이 대화는 거부한 채 잇따른 손배소송 제기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양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6억원, 3년 전 8천500만원 손배소송 ‘패소’

15일 전국택배노조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이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총 4건으로, 2건은 1심에서 CJ대한통운 패소로 마무리됐고 나머지 2건은 심리가 진행 중이다.

원고 패소로 종결된 두 사건은 2018년 분류작업을 둘러싼 갈등에서 촉발됐다. 노조 울산지회는 분류작업이 ‘공짜노동’이라고 주장하며 개선을 요구했지만 원·하청 모두 교섭에 응하지 않아 2018년 4~5월부터 토요일 분류작업을 거부했다. 이에 CJ대한통운은 노조원들이 담당할 물품을 직영 택배기사를 통해 직접 배송하기로 했는데 노조원들이 이를 방해했다며 21명을 대상으로 15억9천924만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노조 분당지회도 분류작업 개선을 포함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지만 사측이 교섭에 응하지 않아 2018년 2월 택배운송을 거부했다. CJ대한통운은 택배화물을 불법점유해 배송을 거부해 손해를 입었다며 15명을 대상으로 8천559만원을 배송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울산과 분당 사건 모두 법원은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는 지난해 1월21일 “택배기사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로 본다면 (쟁의행위로서 거부한 분류작업이) 근로조건의 개선에 관한 사항이므로 쟁의행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며 “직접 배송을 방해하는 것은 자신들의 생계 수단을 빼앗기는 데 대한 항의의 일환이고 그 자체로 자신들이 배송을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CJ대한통운측이 법원의 보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항소장 각하로 종결됐다. 수원지법은 2019년 5월 “조합원들은 원고측에 수차례 교섭요구를 했으나 교섭을 거부하자 노조법에서 정하고 있는 조정절차 및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을 진행한 점에서 목적과 절차가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사건은 항소 취하로 종결됐다.

협상 타결 세 달 지나서 20억원 규모 소 제기

분류작업 문제는 지난해 6월 노사정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택배기사 업무에서 분류작업을 완전히 배제하기로 하면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 이후에도 이행 여부를 두고 원·하청 노사 간 갈등은 계속됐다. 대표적인 게 택배요금 인상분 배분 문제다. 노조는 인상분이 택배사 이익으로 귀결되고 있다며 지난해 12월 파업을 시작했고, 진통 끝에 대리점연합과 공동합의문을 도출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그런데 CJ대한통운은 협상이 타결된 지 세 달이 지난 시점에서 노조의 본사 점거농성으로 100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와 노조원 88명에게 2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수수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한 익산지회를 상대로 2억원대 손배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대화 요구→거부→강경투쟁→소송전’으로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불필요한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손배·가압류가 경영자들에게 노조파업을 사후적으로 통제하고 단체행동을 제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사태 해결의) 돌파구를 이런 식으로 찾으면 악순환이 돼 강대강 싸움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는 성명서를 통해 “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한 갈등의 불씨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합의의 의미를 되새겨 택배노동자들과의 갈등 골만 깊게 만들 뿐인 민형사 소송을 즉각 취하하고, 갈등의 원인인 노동권을 부정하는 모든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