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재해 예방과 치료, 그리고 재활과 보상이 따로 논다. 독일에서는 이 네 가지 업무를 동일한 기관, 즉 ‘독일법정사고보험(DGUV)’이 맡는다. 1884년 세계 최초로 재해보험을 도입한 독일은 1925년 업무상 질병까지 보상 범위를 확대했으며, 1942년 보험 적용 대상을 전체 임금노동자로 넓혔다. 1971년부터는 유치원생이나 대학생을 포함한 전체 학생에게 상해보험의 일환으로 이 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DGUV는 노동자만을 위한 산재보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재해보험 기능도 맡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에 DGUV에 가입한 기업과 기관은 380만곳에 달했다. 전년도에 비해 9천곳이 줄어든 수치였다. 지난해에 DGUV를 통해 모두 6천310만명이 직업병뿐만 아니라 업무와 통근, 그리고 학교활동과 통학으로 도중 일어난 부상과 질병에 대비한 보험을 적용받았다. 독일의 정부 기관이나 정부 산하 공단은 산재 예방·치료·재활·보상 제도를 운영하거나 관리하지 않는다. 모두 DGUV의 몫이다. 150년에 걸쳐 진화해 온 제도인 만큼 DGUV는 다양한 민간보험공단과 공공기관의 결합물로서 존재한다. 여기서 말하는 민간보험공단이란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회사가 아니라 정부로부터 독립해 있는 공적 보험기관을 말한다. 연방정부의 노동사회부는 주정부와 더불어 직장보험공단들의 우산 조직인 DGUV를 감독하게 된다.

DGUV 체계에서 민간부문의 업무상 재해에 대비해 보험을 제공하는 기구는 직장보험공단들이다. 직장보험공단은 민간부문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이나 기관의 사용자가 납부하는 보험료로 운영된다. 공공부문에서는 사용자로서의 국가가 재원을 충당하는 재해기금들을 두고 있다.

민간부문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비하는 직장보험공단으로는 원료·화학산업보험공단(피보험자수 128만명), 목재·금속산업보험공단(402만명), 에너지·섬유·전기산업보험공단(302만명), 건설산업보험공단(208만명), 식품·접대업보험공단(167만명), 상업·상품물류산업보험공단(432만명), 운수·통신산업보험공단(168만명), 보건의료·복지산업보험공단(521만명) 등이 있다. 2021년 현재 317만개소가 넘는 민간부문 기업과 기관들이 직장보험공단에 가입해 있고, 3천252만명의 민간부문 노동자들이 DGUV의 적용을 받았다. 공공부문에서 DGUV에 가입한 기관은 48만6천개소였고, 823만명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보험을 적용받았다.

이들 직장보험공단은 치료 제공과 급여 지급은 물론이거니와 산재와 직업병 예방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를 위해 모든 공단은 사고와 질병을 예방하고 관련 법규를 집행하는 감독관을 두고 있다. 직장보험공단은 치료와 보상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예방 활동도 한다. 이를 위해 안전보건 문제와 관련된 근로감독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보험공단에 속한 감독관은 정부 소속 근로감독관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갖고서 자기 역할을 한다. 일부 주에서는 주정부가 특정 산업에 한해 연방노동법 집행 역할을 직장보험공단에 위임하기도 한다. 이 경우 공단은 자체의 예방규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연방법 집행을 책임지게 된다. 이런 사례는 주로 농업에서 발견된다.

참고로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서 근로감독은 연방정부가 아니라 주정부가 주도한다. 그리고 근로감독은 대개 주정부에서 노동·사회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감독하에 집행된다. 근로감독 예산 마련과 관리도 주정부가 책임진다. 노사관계·사회보장·고용·직업훈련·산업안전보건·노동기준 같은 노동문제는 연방정부의 노동사회부에서 주관하지만, 관련 정책의 집행은 주정부에서 담당한다. 따라서 직업안전보건법 집행은 16개 주정부의 소관이며, 이를 위해 어떤 체제를 꾸릴지도 주정부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DGUV 체계에 속한 직장보험공단들은 연방정부는 물론 주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사업을 펼치고 있다.

DGUV를 구성하는 직장보험공단들을 관리하고, 이들 공단에 대한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규제력과 조정력을 높이기 위해 국가직업안전보건대회(NAK)가 운영되고 있다. 연방정부와 16개 주정부, 그리고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직업안전보건을 책임지는 직장보험공단의 대표자로 구성되는 국가직업안전보건대회에서는 노동자의 안전·건강과 관련된 법령과 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한다. 당연히 노사단체 대표는 직장보험공단은 물론 DGUV의 지배구조와 국가직업안전보건대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 동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모든 회사와 기관은 사회법에 따라 법적으로 DGUV 체계를 구성하는 직장보험공단의 회원이 된다. 회사를 설립하거나 회사에 변동이 있을시 1주 내에 해당 보험공단에 알려야 된다. 노동자에 대한 보험료는 회사가 부담하며 취학아동·학생·자원봉사자의 경우 세금으로 충당한다. 사용자는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법률에 따라 피보험자가 될 수 있다.

재해 발생시 직장보험공단은 재해노동자에게 치료, 직장 복귀 및 적응 서비스, 지역사회 통합 서비스, 재활운동, 서비스 제공 기관 방문 교통비, 사회적 지원 혹은 가사 도우미, 육아 비용, 장례비 등을 폭넓게 제공한다. 신청을 포함한 모든 과정을 노동자가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공단에서 일하는 직원과 공단이 지정한 의료기관이 책임진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DGUV 체계의 특성은 안전과 건강에 대한 근로감독을 포함한 예방활동을 직장보험공단에서 직접 수행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체계 안에서 치료·재활·보상은 물론 예방까지 이뤄진다는 점에서 독일의 직장보험공단들은 ‘DGUV 하나로(One Source)’를 강조한다. 예방 따로, 치료 따로, 보상 따로 이뤄지는 우리나라에 상황에서 독일의 DGUV 체계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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