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28일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미국노총(AFL-CIO)이 배포한 포스터다. “안전한 일자리는 모든 노동자의 권리”라는 의미를 담았다. <미국노총>

2020년 미국에서 하루 340명이 위험하고 해로운 근무조건 때문에 죽었다. 직업병으로 죽은 노동자 수는 12만명으로 추정된다. 일터에서 일어난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705명에 달했는데, 그중 392명은 자살자였다. 이는 업무로 인한 사망 원인에서 네 번째를 차지했다. 사업장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 수는 4천764명이었고, 업무상 재해로 인한 10만명당 사망률은 3.4명이었다(참고로 한국은 2019년 기준 4.6명이다).

일터에서 죽은 노동자 가운데 라틴계와 흑인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근골격계 질환이 업무로 인한 부상과 질병의 21%를 차지해 그 비중이 가장 컸다. 사용자가 신고한 수치만으로도 한 해 320만명이 업무상 부상과 질병으로 고통받았다. 신고되지 않거나 신고가 부실한 사정을 고려하면, 업무상 부상과 질병의 피해자는 한해 540만~81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노동자의 부상과 질병 때문에 발생한 비용은 1천760억 달러(한화 230조원)로 추산된다.

이상의 내용은 미국노총(AFL-CIO)이 지난 4월 발간한 <업무상 사망: 방치된 사상자>(Death on the Job: The Toll of Neglect) 보고서에 나오는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노총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상태에 관한 보고서를 내왔으며, 이번에 31번째 보고서를 낸 것이다.

미국노총은 보고서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 때인 1970년 제정된 직업안전보건법(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ct)으로 인해 미국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처음으로 보장받았으며, 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64만7천명의 생명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법에 의거하여 연방정부 산하에 직업안전보건행정청(OSHA)과 전국직업안전보건원(NIOSH)이 만들어졌다.

미국노총 보고서에 따르면, 업무상 재해로 인한 10만명당 사망률이 가장 높은 주는 와이오밍(13.0)이었고, 알래스카(10.7), 사우스다코타(7.8), 노스다코타(7.4), 웨스트 버지니아(6.6)가 뒤를 이었다. 산업별로는 농림어업의 업무상 재해 사망률이 21.5로 가장 높았고, 운수·창고(13.4), 광업석유가스시추(10.5), 도매업(4.6)이 뒤를 이었다. 65세 이상 고령 노동자의 사망률은 8.6에 달해 전체 평균의 2배를 상회했다.

코로나19 전염병 확산과 관련하여 미국노총은 전염이 이뤄진 주요 장소로 사업장을 주목하면서, 사업장 감염으로 사망자 수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와 관련된 전국 수준의 통계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직업안전보건청이 구속력을 가진 코로나19 지침을 공표하지 않은 사실도 문제점으로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회계연도에 직업안전보건청에 소속된 감독관 수는 1천719명에 불과했다. 그 중 연방감독관은 755명이고, 주감독관은 964명이었다. 미국노총은 직업안전보건청이 생긴 이래 감독관 수가 가장 적은 수준이라면서 감독관 1명이 담당해야 하는 노동자 수가 8만1천427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권장기준은 감독관 1명당 노동자 1만명이다. 1970년 법 제정 이래 미국 전역의 일터에서 42만5천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죽었지만, 이 가운데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는 직업안전보건행정청과 광산안전보건행정청(MSHA)을 합쳐 115건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에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기관은 환경보호청(EPA)이지만 직업안전보건행정청 및 광산안전보건행정청과 제대로 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 미국노총은 안전보건체제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안전보건 업무를 책임지는 기관들인 직업안전보건행정청, 광산안전보건행청정, 전국직업안전보건원, 환경보호청 사이의 조정과 협력을 증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노동자 부상과 질병 사례의 33~69%를 놓치고 있는 미국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BLS)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보고서에서 미국노총은 지금의 직업안전보건법이 50년 전에 제정되어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것이 되었다고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처벌 기준을 강화한 내용을 담은 ‘미국노동자 보호법안’을 의회가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의회 하원에 수차례 제출된 미국노동자 보호법안은 △직업안전보건법의 적용 대상을 지방정부 공무원에게 확대하고, △위험한 근무조건을 제때 시정할 의무와 업무상 부상과 질병의 정확한 기록을 유지할 의무를 사용자에게 부과하며, △안전보건법을 고의로 위반한 사용자를 중죄인으로 처벌하고 그 대상을 기업 임원과 이사에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재계의 반대와 공화당 의원들의 비협조로 하원의 교육노동위원회에 아직도 계류 중이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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