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A씨는 2021년 4월9일 근로복지공단 서울서부지사에 직장내 괴롭힘으로 발생한 우울증의 상병으로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공단은 2021년 9월9일 ‘업무관련성 특별진찰’ 요구서를 보내왔다. 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은 특별진찰이 많이 밀렸다면서 2022년 4월에서야 특별진찰을 시작했다. 이 사건은 2022년 7월에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로 넘겨졌다. B씨는 2022년 2월16일 공단 용인지사에 상사의 괴롭힘으로 발생한 우울증의 상병으로 산재 신청을 접수했다. 2차례 요청했지만 공단 담당자는 사업주 의견서를 아직도 보내주지 않고 있다. 담당자는 2022년 5월26일 ‘업무관련성 특별진찰 요구서’를 보내왔다. 공단 안산병원은 빠르면 10월에야 진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공단은 2006년 6월29일 제정한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 지침을 지금까지 4차례 개정했다. 2021년 1월13일 지침 제2021-05호로 개정한 지침은 “정신질병 진단의 객관화”라는 명목 아래 “필요한 경우 진행 경과를 파악하기 위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119조에 따른 진찰요구를 할 수 있음. 특진의료기관은 소속병원 또는 종합병원 이상으로서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가진 전문가를 보유한 의료기관 중에서 복수 추천하여 선택 가능함”이라고 명시했다. 또한 “임상심리검사 결과가 없거나 제출된 검사결과가 정신질병 특진의료기관(공단 소속병원 또는 종합병원 이상으로서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가진 전문가를 보유한 산재보험 의료기관)에 해당하는 의료기관에서 실시한 경우가 아닌 경우 특별진찰 의뢰”하도록 규정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공단 특별진찰 평균 소요기간은 2020년 118일, 2021년 148일, 올해는 5월 기준 145.9일에 이른다. 지난해 공단 소속병원의 특별진찰 소요기간은 인천병원 205.4일, 안산병원은 144.2일, 창원병원은 87.8일, 순천병원은 76일, 대전병원은 101.2일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공단이 판정한 정신질환 산재는 695건이다. 이 가운데 257건은 특별진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172건이 실시됐다. 미실시한 85건은 올해로 이월했다. 한 해 접수된 정신질환 산재 신청 중 4분의 1 정도가 특별진찰로 회부된다. 결코 적은 비중이 아니다.

문제는 공단의 정신질병에 대한 특별진찰제도에 있다. 일단 통계로 드러나듯 특별진찰이 장기화되고 있다. 통상 5개월 정도 소요되는 이 기간에 재해자의 불안은 크게 증폭되고, 이로 인해 제대로 치료받을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정신질환 발생 원인 대부분은 직장내 괴롭힘이나 회사와의 갈등, 인간적인 관계다. 주로 사업장 내 갈등과 분쟁이 원인이다. 인간적인 괴롭힘과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특별진찰 장기화로 인해 산재를 신청해도 판정까지 1년이 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다른 상병과 달리 정신질환은 장기휴직이나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 사업주도 통원치료 등 출근을 강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신질환 산재 신청이 사업주에 ‘눈엣가시’ 같은 행위로밖에 비쳐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단의 조사와 판정 장기화는 오히려 정신질환 상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다른 상병의 특별진찰에서도 확인되듯 정신질환 역시 재해조사 담당자의 부실한 조사가 반복된다. 정신질환 산재 신청이 접수된 이후 공단은 기본적으로 재해자에 대한 문답조사, 사업장에 대한 의견서 요구 및 문답서 제출 등의 과정을 거친다. 특별진찰이 결정된 이후에는 3~5개월의 상황이 지속되며, 이후 실질적인 모든 조사는 특별진찰기관인 공단 병원이 담당하게 된다. 공단 병원에서 업무관련성에 대한 평가까지 도맡게 되면 세밀한 조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단이 사업장이나 행위 당사자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은 채, 특별진찰 기관으로 넘기는 경우도 많다. 담당자는 특별진찰이 왜 필요한지, 언제 특별진찰이 이루어지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전혀 하지 않는다. 오로지 ‘공단 병원에 문의하라’는 말만 반복한다. 이후 공단 병원에서는 특별진찰이 밀려있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를 답변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한다. 특별진찰이 시작된 이후에도 공단 조사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조사했던 사항을 재해자에게 반복적으로 물어 외상을 심화시키는 행위도 발생하기도 한다. 또 공단에서 해야 할 사업장 조사를 뒤늦게 하는 경우도 있다.

최초 요양 신청시 공단 지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자문의)’에게 임상 소견을 받아서, “주치의 소견이 명확히 틀릴 경우” 또는 “주치의 소견조회서상 이상 소견이 있을 경우”에 한해 특별진찰을 하도록 지침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질병판정위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이 참석해 진단 상병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특별진찰을 이유로 산재 심사서류를 5~8개월을 묵혀둘 이유가 전혀 없다. 특히 질병판정위에서 신청 상병의 “변경 승인”을 허용하고 있으며, 상병 진단에 있어 보충적 자료로 활용될 뿐인 임상심리검사에 공단이 집착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다.

특별진찰 장기화로 산재 신청이나 조사 과정에서 포기하는 노동자가 발생하고 있다. 공단이 복잡한 제도를 만들어 노동자의 질병 치료를 방해하고 있다. 심지어 산재보험의 근본 취지인 ‘신속한 판정’을 저해한다면, 특별진찰 제도는 공단과 공단 소속병원 간의 내부자 거래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