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조가 있었으면 좋겠다.”

13년 동안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로 일한 박수호(43·사진)씨는 이렇게 생각했다. 약정된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해도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했고, 임신 중인 동료가 하혈해도 곧바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2017년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망설임 없이 가입했다. 수십 개 도급업체에 흩어져 근무하던 제조기사는 SPC그룹 계열사 피비파트너즈 직원이 됐다.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던 점심시간도 되찾았다. 노조가 생긴 뒤 바뀐 것들이다.

기쁨도 잠시 그는 현재 과거로 되돌아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달 4일부터 단식에 돌입한 이유다. <매일노동뉴스>가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에서 25일째 단식 중인 박수호씨를 만났다.

“체중 11킬로그램 줄어”

박수호씨는 동료 네 명과 함께 이달 집단단식을 시작했다. 동료 3명은 건강이 악화돼 단식을 중단했고 현재 박수호씨와 최유경 수석부지회장만 남아 단식을 이어 가고 있다. 박씨의 체중은 그사이 11킬로그램이 줄었다.

그는 “배고픔이 크지는 않은데 멍하고 두통이 있다”며 “결혼하고 아기가 있어 식구들이 가장 생각난다. 2~3주면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길어져 가족한테 많이 미안하다”고 전했다.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알리 없는 그의 아들은 “영상통화를 하면 ‘유튜브를 봐야 하니 (전화를) 끊으라’고 한다”며 웃었다.

박씨는 회사에 부당노동행위 사과와 2018년 사회적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SPC그룹 계열사인 ㈜파리크라상은 파리바게뜨 제조기사 불법파견 논란이 일자 2018년 1월11일 제조기사를 자회사를 통해 직접고용하고, 3년 안에 파리크라상 직원 임금과 동일하게 맞추기로 합의했다. 당시 사회적 합의 주체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민주노총·한국노총, 시민사회대책위원회·더불어민주당·정의당이 참여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지키기는커녕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게 지회 주장이다. 지회는 중간관리자가 조합원을 찾아가 탈퇴를 종용하거나, 탈퇴서를 조작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한 정황과 증거를 포착했다. 이 기간 지회 조합원은 700여명에서 200여명으로 크게 줄었다.

“직원을 소모품처럼 사용 마라”

서울 서초구 SPC본사 앞에서 단식을 하던 박씨와 동료들은 지난 18일 단식농성장을 민주당 서울시당과 정의당 중앙당사로 옮겼다. 사회적 합의 주체가 합의 이행까지 끝까지 책임지라는 것이다. 박씨는 “합의의 핵심 내용은 본사·계열사 차별을 없앤다는 것인데 민주당은 여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는데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회사가 주최한 사회적 합의 이행 완료 선포식을 찾아 단팥빵을 먹는 퍼포먼스를 했다”며 답답해 했다.

집단단식 23일차인 지난 26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민주당 을지로위의 중재로 노사가 다시 만났지만 입장차만 확인한 채 헤어졌다.

박씨는 “현재 지회 조합원 수가 200명 수준으로 유지 중인데, 남아 있는 조합원은 (회사가) 나가게 만들든 해고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며 “노조가 없어지면 협력사 시절로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조가 없던 시절은 발목뼈에 금이 가 깁스를 한 동료가 쉬지 못해 서서 샌드위치를 싸고, 하혈하는 임산부가 대체근무자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박씨의 바람은 소박하다. ‘회사가 직원들을 소모품처럼 쓰지 않는 것’과 ‘일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다.

요즘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빵과 간식을 만드는 유튜브를 본다. 이유를 묻자 “식구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다”며 “잃은 점수를 만회해야 하지 않겠냐”고 웃음을 지었다.

피비파트너즈 서울남부사업장은 단식 중인 그의 장기 휴무·휴가 신청으로 동료들의 업무가 과중되고 있다며 업무복귀 요청을 반복해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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