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이행검증위원회’가 지난 12일 국회에서 파리바게뜨 여성 제빵노동자들의 노동인권, 특히 임신과 모성보호에 관한 열악한 환경을 드러내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 언론에서는 SPC그룹의 주장을 인용하며 검증위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들이 등장했다. 기사에서는 소위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단 5.94%라는 설문조사 모수는 조사의 신뢰도를 현격히 떨어뜨리는 수준” “설문조사를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두 자릿수 참여율은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보도했다. 설문조사 모수(?)가 5.94%라는 것부터 틀린 말이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5천명 중 297명에게서 응답을 받았으니 5.94%이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 ‘표본수’라고 부른다. ‘모수’는 모집단의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통계량(평균·분산·표준편차 등)을 말한다. 한편 “설문조사를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두자릿수 참여율”이 나와야 한다는 것은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지 알 길이 없다. 이 기준대로라면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조사를 하려면 유권자수 대비 두자릿수(백분율)로 최소 440만명을 설문해야 한다. 적정 표본수는 조사의 목적, 가용한 자원, 연구설계, 통계분석 방법 등을 고려해 산출하는 것이지 두자릿수라는 기준은 없다. 기사에 등장하는 업계 관계자는 설문조사나 통계 관련 업계가 아닌 제빵업계 관계자인 것일까?

“‘SPC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유산율 41%?’ 설문조사 ‘허위사실’ 논란”이라는 표제의 기사도 등장했다. ‘검증단’의 설문조사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에 대한 표본조사라기에는 통계적 엄밀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작금의 SPC그룹 행태를 보면 제빵기사 전체의 연령대별 분포를 파악하고 적정한 표본수 산출에 근거해서 무작위 추출된 대상자에게 설문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잘 통제되고 설계된 방식으로 모집단을 대표하는 표본을 추출해 단정한 통계분석 결과를 내는 것은 연구자들의 로망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약을 온전히 피할 길은 없어 바이어스 혹은 연구의 제한점을 전제하고 결과를 해석하게 된다. 이 경우 해석상의 견해 차이를 이야기할 수 있을지언정 ‘허위’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SPC그룹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 독자들에게 검증위가 발표한 유산율 조사 결과가 허위사실로 드러난 것처럼 여겨지도록 기사를 작성했다. SPC그룹의 목표는 명확해 보인다. 일부의 흠결을 빌미로 검증단과 검증단의 조사결과 전체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검증단의 실태조사에 응답한 제빵기사 297명 중 여성은 238명이다. 그중 5.0%인 12명이 임신을 경험했고 5명이 유산을 겪었다고 답했다. SPC그룹의 조사에서는 제빵기사 5천명 중 여성은 3천826명(구체적 인원을 밝히지 않아 검증단 자료로 추산)이었다. 그중 4.9%인 188명이 임신을, 22명이 유산을 경험했다. 임신 경험률은 검증단 조사 5.0%와 거의 차이가 없었으나, 유산율은 검증단 조사가 41.7%, SPC 조사가 11.7%(188명중 22명)로 나타났다. 국내 직장 여성의 유산율은 23~31%까지 보고되고 있다. 이 차이에 대해서 SPC그룹은 전체 제빵기사 중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약 4%밖에 안 되지만, 검증단 조사에 응답한 이들 중에서는 조합원이 61%라는 점을 들어 결과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의도적으로 편향된 응답을 했다면 임신 경험률에서도 차이가 나야 할 것이나 그렇지 않다. 또한 임신 경험률은 제대로 응답하고 유산경험을 과장했다면 SPC그룹 조사에서도 똑같이 유산경험을 과소 보고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두 조사 간의 차이를 어느 일방의 신뢰성과 객관성의 문제로 볼 수 없다. 어쩌면 민주노총 조합원의 구성비가 높은 경우에 유산율이 높은 것은 그간의 SPC 그룹의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노조파괴와 탄압의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와 자연유산과의 연관성에 대한 논란이 존재하지만 2017년의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산모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임신초기 여성에게 해로우며 유산의 위험을 높인다는 보고가 있었다. 2013년 이스라엘 지역에서 임신 전이나 임신 중에 로켓 공격 위험에 노출된 도시의 여성이 그렇지 않은 도시의 여성보다 자연유산 위험이 높았다는 보고를 통해 임신 중 여성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임신초기 유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검증단의 설문결과에는 유산율뿐만 아니라 보건 휴가, 태아검진, 임신한 노동자의 야간근무와 휴일근무 및 초과근무 등 모성보호 관련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내용과 성희롱·성폭력 대응조치 부재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한 휴게공간이 미비해 법정 휴게시간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응답자의 절반이 근골격계질환 문제를 호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SPC그룹 차원에서도 이러한 내용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는지 알 수 없다. SPC그룹의 주장을 인용한 기사에서는 여성노동자의 모성보호 및 안전보건과 관련한 검증단의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조차 없다.

SPC그룹은 검증단에게 설문표본에 대한 신뢰성을 따지기에 앞서 사회적 합의 준수에 대한 신뢰성을 먼저 보여주기 바란다. 차제에 행정당국 역시 파리바게뜨 여성 제빵노동자들의 건강·모성보호와 관련한 문제제기를 외면하지 말고 유산율과 더불어 관련한 법규 준수 여부에 대해서 신뢰성 높은 조사에 나서고 결과에 따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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