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원 노동사회 편집실장 yoon@kisi.org

■ 사회보장 해체와 민영화

작년 11월 미 의회가 670억 달러의 경제발전 패키지를 마련하기로 했으나, 공화당의 거부로 폐기처분 한 것은 그 대표적 예다. 이 패키지는 9·11 테러 이후 위축된 경제상황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들을 위해 실업보험수당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보험급여액을 인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했는데, 상원 표결에서 공화당의 반대로 물 건너 갔다.

여기서 더 나아가 12월11일 백악관이 조정하는 사회보장제도민영화위원회는 국민연금제도를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미국노총과 연구자들은 민영화위원회의 계획안이 실현될 경우,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치명타를 입게 되고, 그 최대 희생자는 미국 사회의 약자인 흑인, 여성, 저임 노동자들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승세를 미국이 깡패라고 주장하는 나라들에까지 넓히겠다는 것이
'전쟁의 해' 주장의 요지다. 그런데 전쟁 대상의 리스트에는 미국 노동자들도 올라 있는 것 같다. 9·11 테러이후 미국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 항공정비사 노사교섭에 개입한 백악관
부시 행정부의 노동자 공격은 법제도의 개악을 넘어 개별 기업의 노사교섭에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유나이티드 항공 사례다. 작년 12월 부시는 대통령비상위원회를 구성해 유나이티드 항공 정비사들의 단체교섭에 개입했다. 미국 법체계에 따르면, 대통령이 노사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비상위원회를 구성하면, 향후 30일 동안 위원회가 조사 활동과 조정을 하고, 이후 30일 동안 해당 노조나 노동자들이 조정안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만약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하원이 나서 중재안을 내는데, 이 경우 노조는 받아들여야 한다. 유나이티드 항공의 경우, 1월 안으로 대통령비상위원회가 조정안을 내겠지만, 정비사들에게 불리한 내용이 될 게 뻔하고, 이 경우 하원이 항공사 노사분쟁에 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부시는 백악관이 관장하는 신용보증기금의 자금 대출을 미끼로 정비사노조의 요구를 거부하도록 항공사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정경유착' 정부
이런 가운데 부시의 핵심 참모들이 부당한 금융거래로 얼마전 파산한 엔론의 중역을 지낸 사실이 밝혀지면서 노동자들의 배신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엔론의 파산은 수천 명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는데, 부시의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 휴스턴에 본사를 둔 엔론은 기업들 가운데 부시를 가장 먼저 지지했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부시의 참모들이 엔론의 부실 경영을 몰랐을 리 없다면서 백악관의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출범 이후 지난 1년 동안 부시 행정부는 반노동자성을 강화한 데 반해, 기업과 부자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정책을 펴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노총은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지지하는 등 외치와 내치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미국 패권주의의 포로로 머물러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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