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거제 대우조선해양에 배치된 경찰이 1도크 하청노동자 농성장 앞을 지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51일 만인 지난 22일 일단락됐다. 2014년에 비해 31%나 줄어든 임금을 정상화해 달라는 요구에서 시작한 파업은 회사가 정한 임금인상률 4.5% 수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2017년 출범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지회장 김형수)는 처음으로 대우조선협력사협의회와 체결한 노사합의서를 손에 쥐게 됐다. 지난해 7월 22개 하청업체에 교섭을 요구한 지 1년여 만이다.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은 협상 타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0.3평 쇠창살 안에 자신을 가둔 유최안 부지회장의 31일간의 모습은 조선 하청노동자의 삶 그 자체”라며 “빼앗긴 임금을 되찾자는 애초 목표는 관철하지 못했지만 하청노동자의 삶을 전 국민에 알렸다는 점은 성과”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의 극한 대립은 끝났지만 다단계 하도급구조 가장 밑에 있는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문제 해결은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겨졌다.

파업 부른 낮은 임금
경찰력 투입·손배 압박에 ‘교섭 쟁점’서도 밀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는 지난 22일 ‘기인상된 2022년 임금인상 적용’과 휴가비로 설·추석 50만원씩, 하계휴가 40만원 지급에 합의했다. 올해 임금을 4~7% 인상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의 평균 인상률 4.5%를 적용한다. 상여금은 대우조선해양 노사 협상 결과에 따르기로 했다. 또 고용안정을 위해 근로계약 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파업의 발단은 30% 삭감된 임금의 정상화였다. 15년차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2021년 임금은 3천429만원으로, 2014년(4천974만원)보다 31% 줄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섭 막판으로 갈수록 임금은 쟁점에서 밀려났다. 지난 15일 파업 이후 처음으로 원·하청 노사가 마주 앉았는데 이 자리에서 사측은 기존 입장과 동일한 ‘4.5% 인상’을 고수했다.

여기에 정부가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면서 상황은 노조에 더 불리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며 수위를 높여 압박하자 교섭 쟁점은 손해배상 책임 범위로 바뀌었다.

노조쪽 교섭대표를 맡았던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임금을 올리려면 대우조선해양이 하청업체에 주는 기성금을 올려야 하는데 임금 30% 인상에 필요한 재원이 1천200억원가량”이라며 “연초에 이미 기성금이 결정된 상황에서 임금인상에 대한 협상 여지가 적었다”고 설명했다.

대신 이번 노사합의를 통해 원·하청 노사와 전문가 2명, 필요시 지방정부도 참여하는 TF를 구성하기로 했다. TF에서는 동종업종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적정 기성금 수준과 하청노동자의 적정 임금수준 등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정규직보다 하청노동자 두 배 많은 조선소
원·하청 교섭구조 없으면 극한 갈등 되풀이

협상 막판까지 쟁점이 됐던 민·형사상 책임 문제와 관련해서는 노사는 최종 합의 과정에서 이미 제기된 형사소송과 고용노동부 진정 건을 제외한 나머지 민형사 부제소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청업체가 소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동자와 금속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의 51일간 파업으로 입은 손해가 8천165억원이라고 주장한다. 자체 추산 결과 매출감소 6천468억원, 고정비 1천426억원, 지체보상금 271억원의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노동부 등 3개 부처 장관은 “노조의 불법행위가 종결됐지만, 점거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며 타결 이후에도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하청노동자들이 조선소에서 선박의 진수가 멈출 정도로 극한의 파업을 한 이유는 하청노동자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원청이 ‘사용자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교섭에도 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에서는 2만5천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데 원청 정규직은 8천명, 하청 비정규직은 1만7천여명으로 두 배 가까이 많다. 조선소에서 중요하지만 위험한 업무 대부분을 하청노동자들이 수행한다. 노동법률단체와 학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하청업체와 같이 단체교섭에 참석했다면 사태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원청 사업주가 단체교섭에 나서도록 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010년 이미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하청노동자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2020년 수자원공사에서 점거농성을 한 청소 용역노동자의 파업이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도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구조적 현안에는 눈감은 채 ‘법과 원칙’만 강조한다는 점이다. 대우조선해양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원청과 교섭을 요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사업장 점거’ 파업을 선택하면 정부가 ‘공권력 투입’으로 파업 해산을 압박하고, 사용자는 수백억·수천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51일간의 파업은 윤석열 정부 5년의 예고편이 될 수 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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