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현우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장

조합원들과 회의가 끝난 뒤 가볍게 맥주를 마셨다. 대화 중에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내 입에서는 ‘공존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적대’ 혹은 ‘대립’ 속에서 서로를 악이나, 이해 못 할 존재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닌 세 번째 길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한 조합원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런 건 없다고 말했다. 단호한 그의 이야기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서울퀴어퍼레이드

지난 토요일, 청년유니온 조합원들과 함께 서울광장에서 개최된 ‘2022서울퀴어퍼레이드’에 다녀왔다.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퀴어퍼레이드는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그곳에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과,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을 죄악시하는 사람들이 경찰이 설치한 펜스를 사이에 두고 서울광장과 태평로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시청 뒤편 2차선 골목, 한 가족이 ‘차별금지법 동성애퀴어축제 반대합니다’는 글귀가 적힌 부채로 바람을 만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서 동성커플로 보이는 두 사람이 가족의 손에 들린 부채를 바라보며 지나쳐 갔다. 법적으로 가족구성권과 심지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커플과 그것을 보장받는 가족이 노란 중앙선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광장은 더 많은 사람의 ‘사랑할 권리’를 지지하는 발언들이, 태평로에는 누군가의 ‘사랑할 권리’를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 탑승권쯤으로 만드는 발언들이 터져 나왔다.

연세대 청소노동자 집회

지난 5월 임금 440원 인상, 정년퇴직 인원만큼의 인력충원 등 처우개선(사실 유지에 가깝다)을 요구하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 청소노동자의 집회로 인해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연세대 재학생 3명이 청소노동자들을 업무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지난달에는 해당 집회로 인한 ‘미래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64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노조에 청구했다.

연세대 재학생 및 졸업생, 시민 3천여명이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연서명에 동참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최인호 서울 관악구의원이 고소 재학생을 지지방문하고는 SNS에 “노동자 정체성으로 무장해 정당하지 않은 요구들을 반사회적인 방법으로 투철시키려는 민주노총의 노동자 탈을 벗겨 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소 재학생을 지지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한편 해당 대학교 건물 곳곳에는 ‘당신이 부끄러웠으면 좋겠습니다’는 제목 등으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고소 재학생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게시됐다.

거제 대우조선해양 농성장

지난달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옥포조선소 1도크 선박에 0.3평 크기 ‘감옥’을 용접해 농성을 시작했다. 조선하청지회의 요구는 불황시기에 대폭 삭감돼 최저임금 수준인 현재 임금의 30% 인상, 단체협약 체결이다. 한국 조선업이 다시 호황을 맞이한 것에 상응해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열악한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한편 대우조선해양은 조선하청지회 파업으로 인해 6월 말까지 2천8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지회를 공격했고, 지난 20일에는 대우조선해양 직원 4천여명이 거제 옥포조선소 앞에서 ‘불법 파업 중단 결의대회’를 열고 “하청지회는 대우조선해양 구성원을 볼모로 생존권을 위협하는 불법파업을 중단하라”며 “삶의 일터를 말살하는 불법 점거를 즉각 중단하고, 합법적인 단체행동을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23일에는 조선하청지회의 투쟁을 지지하는 시민·노동자 2천여명이 ‘희망버스’를 타고 거제 옥포조선소 농성장에 방문할 예정인데, 20일 이정식 장관이 대우조선해양 사측과 조선하청지회 양측을 만나 ‘원만한 해결’을 위한 중재에 나섰다. 19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에서 “불법은 방치되거나 용인돼서는 안 된다”며 “국민이나 정부나 다 많이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 된다”고 밝혀 공권력 투입을 시사했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타협 혹은 대안은 대립되는 입장 속에서 탄생한다. 어떠한 입장도 지지하지 않은 채 ‘공존 가능성’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그 갈등이나 폭력과 무관한 제3자로 위치시킬 때에나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입장을 세우는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다시 선명해진 것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라는 질문이 누가 잘못됐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에 우리의 힘을 실을 것이냐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에 대한 답은 반대입장에 서 있는 집단의 ‘갱생불가능’과 ‘절멸’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을 담아 내고 있는 목소리(입장)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치밀어 오르는 분노 속에서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잃지 않도록.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장 (yunion10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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