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8일 지원 유세 중 총격을 받고 숨졌다. 다음날 아침 여러 신문에 총격 직후 도망하는 용의자를 정장 입은 남자들이 붙잡는 사진이 실렸다. 한겨레는 2면에,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3면에 해당 사진을 실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뒤에서 용의자의 양팔을 붙잡고, 같은 복장의 또 다른 남자는 바닥에 쓰러진 채 용의자의 왼쪽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뒤에 우산 쓴 여성과 자전거 탄 남성의 위치로 봐서 세 신문은 같은 사진을 실었다.

그런데 세 신문의 사진 출처는 제각각이다. 한겨레는 ‘나라/로이터 연합뉴스’라고 출처를 달았고, 중앙일보는 ‘아사히신문’으로, 조선일보는 상업적 사용이 가능한 무료 이미지를 올리는 ‘게티이미지코리아’를 출처로 달았다. 누군가 급박하게 현장을 담아 낸 사진을 이렇게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마구 퍼다 써도 되는지 의문이다.

사진 설명도 제각각이었다. 한겨레는 용의자를 붙잡은 사진 속 정장 입은 남자들을 ‘경찰관’이라고 밝혔고, 중앙일보는 ‘경호원’이라고, 조선일보는 ‘보안 요원’이라고 밝혔다. 제대로 확인했는지 의문이다. 상황이 급박해서 팩트 확인을 다 못했다면 ‘경호원인 듯한’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라고 정직하게 써야 한다.

그런데도 세 신문은 확신이라도 한 듯 ‘경찰관’ ‘경호원’ ‘보안 요원’이라고 단정했다. 언론의 속보 경쟁 때마다 그 나라 언론의 수준이 드러난다. 앵글만 좋으면 출처나 장면 해설 따위는 틀려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지난 8일 오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남문 앞에서 하청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같은 시간 조선소 안에선 파업 중단을 요구하는 대우조선 직원들 집회도 열렸다. 조선소 앞에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안에는 대우조선 직원이 각각 집회를 열었다.

동아일보는 다음날인 9일 10면에 두 집회 사진을 나란히 실었다. 그런데 민주노총 집회는 참가자의 절반도 안 되는 규모로 뒷모습만 찍었고, 조선소 내부 집회는 많은 사람이 모인 것처럼 전체 전경을 찍었다. 사진 설명엔 두 집회 참가자를 ‘민노총 조합원 3천500명(경찰 추산)’과 ‘파업 반대 근로자 4천여명(회사 추산)’이라고 소개했다.

수십년 동안 집회 참가자수를 놓고 주최측과 경찰은 실랑이를 해 왔다. 보통 주최하는 노동자는 숫자를 늘리고, 경찰을 깎아내렸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조선소 밖 참가자수는 축소하려는 경찰에게 물어 3천500명이라고 적시하고, 조선소 안 참가자는 숫자를 늘리려는 회사(대우조선해양) 추산으로 4천여명이라고 적었다. 기자는 두 집회를 눈으로 확인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해관계자가 엇갈리는 양측 대신 기자가 확인한 숫자를 적으면 그만인데 민주노총 집회는 경찰의 입을 빌려 줄이고, 파업 반대 집회는 늘리려는 회사측에 물어서 적었다. 조선소 밖 집회를 주최한 민주노총엔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동아일보는 양반이다. 경찰과 회사(대우조선)가 추산했다며 숫자의 출처라도 정확히 밝혔으니. 매일경제는 같은날 9면에 사진 기사로 두 집회를 보도하면서 조선소 안 대우조선 직원들 집회 사진만 실었다. 민주노총 집회는 아예 싣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매경은 ‘대우조선 직원 5천명’과 ‘민주노총이 주최한 3천500명’이라고 사진 설명을 달았다. 조선소 안 집회 인원을 동아일보보다 늘려 5천명이라고 하면서 그 숫자를 누가 계산했는지조차 밝히지 않았다. 매경 사진엔 ‘불법 파업 즉각 중단하라’는 펼침막을 든 10여명의 대우조선 직원만 나와 집회 참가자수를 가늠할 수도 없다.

속보 경쟁에서 무시되는 작은 실수가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뉴스 전체의 판을 뒤흔드는 오보를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