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 18일 출범했다. 연구회는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노동시장 구축”을 위한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정부는 꽤 힘을 싣는 모양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노사정 대화를 기대하기 어려우니만큼, 전문가의 권위를 정부 정책의 정당성으로 내세우려는 것 같다. 하지만 노동계가 “답정너”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대략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노동시간은 유연화하고, 임금체계는 직무·직능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했던 바이기도 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연구회 첫 회의에서 꼭 집어 저 두 가지를 과제로 제시했다.

그런데 과연 정부는 어떤 미래의 무슨 노동시장을 상상하고 있길래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혁에 저리 목을 매는 것일까? 나는 산업 변화에 적합한 노동시간 유연화와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임금체계 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개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또한 개혁을 저 두 가지 과제로 시작하면 제대로 뭔가 해 보기도 전에 좌초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이야기해 보겠다.

한국은 명실상부 경제 선진국이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구매력 조정 환율 기준)는 세계 평균보다 2.5배나 크다. 심지어 세계 주요 7개국(G7)인 이탈리아· 일본보다도 높다. 30-50클럽(1인당 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 이상)에서는 미국·독일·프랑스·영국 다음이다. 30년 전만 해도 한국의 1인당 GDP는 저들 나라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한국은 한 세대 만에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대단한 경제적 성공을 이뤄 냈다.

하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주관적 행복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은 선진국 사이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다. 유엔 산하 기구가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2019~2021년 한국의 행복지수는 149개국 중 62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선 꼴찌에서 두 번째다. 심지어 지난 20여년을 보면 행복지수가 경제성장에 반비례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유가 뭘까?

간단하게 답하면 노동과 행복의 비례 관계가 끊어진 것이 핵심이다. 행복지수에서 한국의 점수가 낮은 까닭은 긴 노동시간, 높은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의 비율), 부족한 사회안전망 때문이었다. 한국은 이들 지표에서 OECD 최하위권이다. 장시간 일해도 빈곤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심지어 사회적 도움도 받지 못하는 시민이 너무 많다. 국민 평균이라 할 1인당 GDP는 높아졌지만, 동시에 그 평균의 풍요를 전혀 누리지 못하는 궁핍도 심화했다. 전형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한국 노동시장 개혁의 절체절명의 과제는 바로 이 “불행한 선진국”이란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국민경제 차원에서 노동생산성을 향상해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즉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는) 첫 번째 이유는 국민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국민의 불행을 이끄는 생산성 향상이란 얼마나 이상한 이야기인가.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의 목표는 노동생산성의 향상 또는 생산성에 비례하는 소득의 분배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당면 과제는 생산성 향상 이전에 너무나 깊고 넓어진 불행의 늪, 상대적 빈곤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 빈곤층을 줄이는 사회안전망(사회보험 확대, 최저임금 인상, 근로장려세제 확대, 좋은 일자리의 공급 등)이 노동시장 개혁에 앞서, 또는 그 핵심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

사회안전망이 노동개혁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래야만 노동시간 유연화든 임금체계 개편이든, 생산성과 연관된 제도 개혁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개혁의 핵심은 유인(incentive)과 신뢰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제도 변화는 당사자들 모두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어야 가능하다. 단기적으로 이해득실이 갈린다면 장기적으로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만약 이런 신뢰에 기반한 유인이 없으면 제도 변화는 불가능하거나,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는 극단적 충돌을 동반하게 된다. 노동개혁은 특히나 이해관계가 첨예해서 이런 신뢰와 유인이 중요하다. 기업개혁이 아니라 노동개혁이니만큼 노동자의 판단이 중요하다.

그런데 경제적 성취에도 불행이 증가하는 현 한국 상황에서, 노동자가 개혁에 참여할 어떤 유인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생산성 향상에 따라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불행의 늪에 빠진 한국에서는 제도의 공정성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예로 2018년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공정성 인식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법 집행·소득분배·취업기회·승진진급 등에 관해 70% 가까이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부의 제도 개혁이 공정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구회가 목표로 하는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노동시장 구축”은 거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선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단순한 질문안 “왜 경제가 성장해도 인구 상당수가 불행한가?” “열심히 일해도 왜 인구의 상당수가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 유연화나 임금체계 변화는 결과적으로 개혁의 한 부분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저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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