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2020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는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투쟁한 지 136일만에 복직에 합의했다. 잇따른 택배노동자 과로사에 노동환경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던 택배노동자들도 수개월의 투쟁 끝에 사회적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들과 대우조선하청 노동자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임금 수준은 물론 고용권한까지 쥔 사용자인 원청을 ‘사용자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원청이 실질적 권한을 쥔 탓에 하청업체 혹은 도급업체 사용자와 교섭해도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문제는 언제나 원청이 나선 뒤에야 해결됐다. 대우조선하청 노동자 파업도 마찬가지다. 지난 15일 원·하청 노사 4자 대화가 시작된 뒤에야 ‘교섭다운 교섭’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하청노동자의 노조활동이 장기투쟁에 빠지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원청이 간접고용 노동자 단체교섭에 임해야 한다는 학계·법률가 단체에서 나온다.

“교섭 책임 부정하는 원청”

민변은 2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조선의 원청 사용자 책임 부정이 (하청노동자 장기투쟁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난달 2일 조선업 구조조정 시기 깎였던 임금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22개 협력업체와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교섭을 진행했지만 원청이 내려 주는 기성금을 나눠 주는 인력 도급업체나 다름없는 사내하청업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지회는 “원청이 대화에 나서라”고 요구했지만 대화는 노사 모두 큰 생채기를 남긴 파업 44일째야 성사됐다.

학계와 법률단체는 이런 구조를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노동법학계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실질적 지배력을 갖고 있는 원청이 노동자와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본다”며 “현재 법으로도 집행할 수 있는데, 사용자측은 모든 사건을 대법원까지 가져가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원청이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가졌다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2010년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에 근거한다. 당시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하청노동자 원고용주인 하청업체와 유사한 정도의 지배력을 갖거나 행사하면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행위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노조법상 사용자라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경우 교섭에 임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휴일까지 결정”

대우조선해양이 지회와 ‘4자 대화’ 형식이 아닌 단체교섭을 해야 하는 이유다. 김유정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장)는 “하청노동자 임금은 전적으로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에 의해 결정된다”며 “지난 4월 지회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은 노조법 81조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범죄”라고 주장했다.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동자 임금수준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우조선해양에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위반으로 2018년과 2020년 각각 108억원과 1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이때 하도급 업체들을 가리켜 “사무실·장비·기자재·설계 등 작업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지급받고, 오로지 인력만을 공급하는 형태”라고 지적했다. “하도급업체들은 대부분 대우조선해양에 100% 의존하면서 매월 기성금을 받아야만 직원 임금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원청 예산에 따라 충분한 근거 없이 기성금(도급액)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실을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생산통합관리시스템인 SAP를 활용해 하청노동자의 작업내용·작업량·작업속도·업무배치·휴일·휴가·특근 등 작업일정을 관리·결정했다. 김 변호사는 이 같은 정황을 들어 대우조선해양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봤다.

“법 개정해 원청 책임 명문화” 제안

권두섭 변호사는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지우기 위해 법 개정을 제안했다. 권 변호사는 “2010년 현대중공업 판례가 있으니, 노조법 사용자 정의 조항에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자’를 넣으면 된다”며 “근로기준법에도 원청이 (하청노동자 임금·근로조건 결정에) 하청업체와 연대해 사용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넣으면 명쾌히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온전한 결사의 자유 보장을 위한 노력도 강조됐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는 “회사가 쟁의행위를 한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는 “일반적인 쟁의에서 폭력 파괴 행위가 수반되지 않은 경우라면 손배·가압류를 제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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