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 조항이 시행된 지 16일로 3년이다. 문제점을 보완해 한 차례 개정한 법이 지난해 10월14일부터 시행되기도 했다. 지난 3년 노동현장은 어떻게 바뀌었고,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일까.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포함된 가장 큰 효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는 점을 든다. 특히 피해자가 원인 제공자로 쉽게 둔갑하거나, 괴롭힘 자체가 직장 문화처럼 통용되던 한국 사회에서는 괴롭힘을 행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 모두 무엇이 문제인지 알기 어려웠다. 거기에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이름이 붙고 나서야, ‘그럴 만하니까 당했겠지’ ‘다 그렇게 배우는 거야’ ‘다 먹고 살자고 그러는 거지’ 하는 우리의 통념이 왜 문제이고,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잘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산업재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얼마 전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과 직장갑질119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질환 사망(자살) 산재신청은 158건으로 2020년 87건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이 중 인정된 것은 56%에 불과했다.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산재신청 사건이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된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사회적 인식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법 제정 이전에도 직장내 폭언이나 부당한 대우 등으로 정신적 고통이 크고, 그로 인해 자살을 감행했다면 산업재해로 인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이름이 붙고, 이에 따른 정신적 고통과 그 결과인 정신질환이 ‘업무에 의한’ 문제라는 인식이 증가하면서 산업재해 신청이 늘어난 것이다.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다.

그럼에도 노동자 건강 측면에서 여전히 몇 가지 아쉬움은 있다. 우선 직장내 괴롭힘으로 다뤄지는 사건들이 여전히 노골적인 폭언과 폭행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1990년대부터 일본에서 ‘파와하라’라는 이름으로 직장내 괴롭힘이 이슈가 되고 2000년대 이후 한국에 처음 소개될 때, 당시 논의나 연구에서는 직장내 괴롭힘은 ‘물리적 폭력과 달리, 모욕감과 괴로움을 느끼게 하는 비물리적 행위들’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언행이 어떻든 일만 잘하면 되고, 성과를 내기만 하면 된다’는 규칙 속에서 노동자에게 모멸감을 주며,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행위들에 괴롭힘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했다. 이는 ‘직장내 괴롭힘’을 폭로하고 대응하는 과정이 성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직장내 괴롭힘 예방 대응 매뉴얼’에서도 여전히 신체적 폭행이나 위협, 욕설과 고성과 같은 언어폭력 등이 괴롭힘의 주요 사례로 소개된다. 특히 정신질환 산재(신청·승인)까지 이어지는 사례들은 대부분 폭행·폭언·성추행 등 명백한 폭력 사건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법제화 3년이 된 이제는 명백한 폭력 사건에 대한 단호한 제재에서 나아가 저강도의 은밀한, 우리 직장 문화에 내재해 있는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이 좀 더 많이 얘기돼야 한다.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업무상 적정범위’에 대한 감각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업무상 적정범위’는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다. 콜 실적 성적표를 등수에 따라 사업장 입구에 붙여 두는 것은 적정한 성과 독려 방식인가? 가전제품 판매노동자에게 제품 코너를 돌며 시연을 하게 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수십 명이 참여하는 단체채팅방에 업로드하는 것은 적정한 실적 제고 방식인가?

법제화 이후 괴롭힘 사건에 대한 개인적 피해와 그 구제 방안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면, 이제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되짚어 보는 것을 포함, 일터의 규칙과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동자의 힘을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직장내 괴롭힘 예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전반적인 노동권·노동인권 확대 강화다. 노동자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우산은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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