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87년 개헌 이후 4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대통령 얼굴은 바뀌었지만 사회 양극화는 차곡차곡 격차를 벌려왔습니다. (기성 정당들이) 모두 정책과 이념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6공화국을 해체해야 합니다.”

고 노회찬 의원이 2007년 7월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 중앙선거대책본부 출범식에서 ‘제7공화국 건설운동’을 선포하며 한 말이다. 그는 “우리는 전혀 새로운 철학, 전혀 새로운 사상, 전혀 새로운 근본노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의 선언은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메아리치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사회 양극화는 더 벌어졌고, 유례없는 경제위기라는 ‘퍼펙트스톰’이 다가오지만 새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치마저도 연속된 선거패배로 우왕좌왕할 뿐 사회 양극화 해법은 물론 다가오는 대전환 시대의 비전 제시는 언감생심이다.

노회찬 ‘7공화국 선언’ 다시 메아리

노회찬재단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고 노회찬 의원 4주기를 맞아 13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제6공화국을 넘어, 새로운 공화국으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기조발제에 나선 조돈문 재단 이사장(가톨릭대 명예교수)은 “지난 대선에서 불평등 심화 속 평등가치가 실종된 채 ‘노동 없는 대선’이 되고 ‘반노동 후보’가 당선된 것은 진보정당과 노동계급 정치세력화 실패의 후과”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노동운동과 진보정치가 더 심화하는 불평등·불공정을 억제하며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대안사회 모델은 무엇일까. 조 이사장은 ‘스웨덴 모델 플러스 알파’를 제시했다. 그는 “2000년 민주노동당 강령과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 대안사회 모델에 잘 집약된 ‘풍요로운 평등사회’와 2007년 노 의원의 ‘7공화국’ 모델이 있다”고 소개했다.

풍요로운 평등사회는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에 민주적 시장사회주의 지향을 결합한 것이고, 7공화국은 신자유주의 해체와 평등·통일 가치에 기초한 새로운 공화국을 지향했다는 설명이다.

조 이사장은 “스웨덴의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노동계급이 농민계급과 계급동맹을 통해 건설했으나 복지국가를 방어하는 복지동맹에는 여성이 노동계급의 주요한 동맹세력으로 역할을 수행했다”고 시사점을 강조했다.

“국가의 역할 강화된 새로운 복지국가”

김윤철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칼리지)는 주제발표에서 “이번 대선이 왜 국가비전도 없는 엉망인 대선이 됐느냐”며 “정치 불평등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상위계층이 물질적 자본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자본까지 사유화하면서 사회적 약자는 아무런 교섭권력도 없는 사회·경제적 및 정치 불평등에 놓여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민주화 이후 공화적 기반인 노동과 평등을 배제하면서 맞이한 정치·사회적 현실이 정치 사유화”라며 “이 과정에서 진보정치가 말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은 완전히 힘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정치·경제·사회 질서를 구성할 때는 이념적으로만 접근하는 게 아닌 융·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특히 정치·경제 자원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집중해서 그들을 정치적 주체로 만들어야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주제발표를 맡은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불평등과 격차 같은 기존의 사회적 위기와 새로운 전환의 과제에 대응하는 새로운 복지국가 요소에서 먼저 국가의 귀환, 즉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절반 수준인 사회지출 규모를 최소한 평균에 이를 때까지는 큰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경로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의원은 인사말에서 “진보의 미래를 낙관한다. 그 말만큼 우리 꿈에 대한 집념과 의지를 보여주는 말은 없다”며 “혁신도 희망을 위해 하는 것이다. 철저히 성찰하되 우리가 걸어 온 길에 대한 자존감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김형탁 재단 사무총장 사회로 진행됐다.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박진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장·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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