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하나의 일을 잘게 쪼개 놓은 업무를 담당하는 미세작업 플랫폼 노동자(크라우드 워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독일 연방법원 판결이 재조명받고 있다.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수용한 독일 법원의 시각을 우리도 곱씹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주노총 부설 노동자권리연구소는 11일 ‘크라우드 워커의 근로자성에 관한 독일 연방노동법원 판결’을 주제로 이슈페이퍼를 발간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이 판결문을 번역해 전문을 소개하고, 박 교수가 판결 의미와 시사점을 담았다.

독일인 A씨는 2018년 2월부터 11개월 동안 플랫폼기업 로암러(Roamler)의 스마트폰 앱으로 일했다. A씨는 소매점·주유소에서 판매되는 상품이 제대로 진열되고 있는지, 버스정류장·키오스크 등에 광고가 잘 붙어 있는지 등을 기업이 확인할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 업로드하는 일을 주로 했다. 주당 20시간 정도 일하고, 11개월 동안 2천978개의 과업을 했다. 매달 약 1천750유로를 받았다. 이 회사가 업무를 배당하지 않을 것이고, 플랫폼 앱 계정도 삭제하겠다고 통보하자 A씨는 법원에 고용계약이 존재한다는 확인을 청구했다. 부당해고 소송이다.

독일 연방노동법원은 2020년 12월 양 당사자 간 근로계약 관계가 존재한다며 부당해고 판결을 했다. 플랫폼기업이 앱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를 구속했다는 점을 사유로 밝혔다. A씨와 로암러가 맺은 계약에는 노동자가 플랫폼기업의 업무 제안을 수락할 의무가 없다고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더 많은 미세작업을 수행해야만 레벨이 올라가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보수를 얻을 가능성이 커지도록 설계된 플랫폼 시스템 자체가 노동자로 하여금 지속해서 업무를 수행하도록 만들었다고 판시했다. 플랫폼 노동자는 종속적 관계로 플랫폼기업의 지시에 구속된 근로자라고 인정했다.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해 학습지교사·골프장캐디 등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지 않는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교훈을 주는 판결이다. 박귀천 교수는 “한국에서도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이 첨예하고 다퉈지고 있듯이 독일에서도 대상판결은 사회적으로 많은 방향을 불러일으켰다”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주로 제조업 등 전통적인 산업 분야의 근로관계에서 (인적종속성을 판단할 때) 문제가 되는 지시·구속성이 오늘날 디지털화한 노동세계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노동법이 보호하는 종속노동의 본질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 유의미한 시사점을 주는 판결이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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