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추공장 노동자 A(사망 당시 45세)씨는 2020년 2월 공장 기계실에서 ‘일자리’ 등 단어가 적힌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경기도 고양시’ 주소가 반복적으로 쓰여 있고 ‘태어나서 서울로 상경하여 단추공장에서 일 처음 했습니다’고 적혀 있다. <판결문 중>

“(저는) 태어나서 서울로 상경해 단추공장에서 일을 처음 했습니다.”

폐업 위기에 놓인 단추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A(사망 당시 45세)씨는 2020년 2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는 선뜻 알아보기 어려운 단어들로 가득했다. 권고사직과 이에 따른 불안이 벼랑으로 내몬 흔적도 남아 있었다.

세 명 일하는 영세공장, 폐업 위기
고민 나눌 지인 없이 ‘극단적 선택’

1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사건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경기도 파주의 한 단추공장에 입사했다. 서울에 올라와 시작한 첫 직장 생활이었다. 그런데 해마다 일거리가 줄어 2019년께는 공장 대표와 그의 아들, A씨만 남았다.

대표는 결국 폐업을 준비했고, A씨는 일거리가 없어 1주일에 2~3일 정도만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실상 권고사직 상황에 직면한 A씨는 폐업 소식에 구직 활동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 무렵 대표는 A씨에게 공장의 하청 생산을 맡기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했으나 일거리가 많지 않아 조만간 폐업될 상황이었다. 미혼이었던 그는 고민을 나눌 가족이나 지인도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손가락까지 다쳤다. 2019년 12월 손가락 골절상을 입고 휴업급여를 받았다.

A씨는 결국 손가락 치료를 받던 중 이듬해 2월 공장 기계실에서 유서 한 장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공장 대표의 아들이 사망 이틀 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유서에 거주지를 여러 번 반복해서 쓰거나 즐겨 본 드라마나 하고 싶은 일을 두서 없이 남겼다. 구직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일자리’도 적혀 있었다.

형제들은 A씨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자문의사회 심의 결과가 판정에 영향을 줬다. 자문의사회는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은 확인되지 않고, 앞날에 대한 생계 불안 및 업무 외적인 사유 등 개인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유족은 2020년 12월 소송을 냈다.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의 소견은 달랐다. 공장 대표가 산재 요양기간에도 조기에 복귀하라고 종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A씨의 정신적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봤다. 또 폐업과 구직활동 실패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확률도 있다고 판단했다. 하청계약 이전부터 고용불안이 지속됐다는 것이다.

유서에는 ‘일자리’ ‘단추공장’ 표현
법원 “고용불안, 극단적 선택 원인”

법원도 A씨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과도한 업무량과 열악한 작업환경, 실직에 관한 두려움, 손가락 부상 등이 결합해 심리적 불안 상태를 유발했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정상규 부장판사)는 “망인은 폐업 이야기에 취업을 위한 구직 활동을 했으나 모두 실패한 것으로 보이고 어려움을 주변인들에게 호소했다”며 “하지만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이를 함께 나눌 가족이나 지인이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시했다.

특히 A씨가 남긴 유서는 정상적인 의사 표현조차 힘든 상황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유서의 ‘일자리’ 등 표현이 손가락 부상 후 고용불안 문제가 망인의 사망에 직접 관여됐을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폐업 알림과 권고사직 합의로 인한 고용불안의 지속,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업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심리적 부담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며 “망인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 있었다고 추정되고, 업무요인이 이러한 정신적 건강 상태에 관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유족을 대리한 윤다솜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상황 자체가 업무상 재해 요건인 ‘정신적 이상’에 해당한다는 감정의 소견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망인을 둘러싼 업무환경과 사회 경력, 유서에 적힌 단어 등을 사망의 원인으로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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