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조선일보는 지난달 15일 8면에 ‘200억 뇌물 약속받은 혐의, 부산북항 재개발 단장 기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대형 국책사업인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을 총괄했던 정성기 초대 부산북항통합개발추진단장이 지역 건설업자에게 특혜를 약속하고 나중에 200억원을 받기로 한 혐의로 기소됐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해양수산부 3급 간부 공무원이 이런 비리 의혹을 받았으니 당연히 보도할 만하다. 부산북항 재개발 관련 잡음은 심심찮게 들렸다. 지역 토호와 담당 공무원의 유착 의혹도 여러 번 흘러나왔다. 급기야 대전지검이 최근 정 전 단장을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일보는 이 보도를 하면서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방점을 찍어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북항 재개발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며 기사의 작은 제목에 ‘文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업’이라고 붙였다. 이 비리에 문재인 정부가 연루됐을 가능성 때문에 이를 언급할 순 있지만, 수사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해 3월 해수부가 북항 재개발을 자체 감사하면서 발견했고, 해수부가 정 전 단장을 권한 남용 등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수사의 출발선 자체가 전 정부 때다. 뭐라도 하나 잡히기만 하면 무조건 전 정부 탓으로 돌려 흠집 내려는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비교적 낮은 지지율에도 순조롭게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윤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서도 거침없는 언사로 주위를 충격에 빠트리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부인의 봉화마을 방문 논란에 “대통령을 처음 해 보는 것이라…. 방법을 좀 알려 달라”고 했다. 검찰의 정치보복 수사 논란엔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느냐”고 반문했다. 전 정부가 임명한 장관급 기관장의 국무회의 참석 여부엔 “굳이 올 필요 없는 사람까지 다 배석시킬 필요가 있나”고 반문했다. 종부세 인하가 ‘부자 감세’라는 주장엔 “그럼 하지 말까”라고 반문했다.

윤석열 정부 검찰은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장관이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산하기관장의 사퇴를 종용했다며 맹렬히 수사 중이다.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라는 소리다. 이 와중에 현직 대통령이 임기가 남은 전 정부의 기관장이 국무회의 참석을 배제하는 건 모순이다.

대통령 처음 해 본다는 언사는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한 국가라는 사실과 충돌한다. 스스로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해 놓고 이제 와서 부인이 어떻게 활동할지 방법을 좀 알려 달라니.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냐”와 “전 정부엔 민변 출신을 도배했다”는 말은 유치하기 그지없다. 취임 50일도 안 된 대통령 지지율이 긍정평가보다 부정평가가 높은 ‘데드크로스’를 기록했다.

이런 언사는 윤 대통령 스스로를 프레임에 가둔다. 물론 사실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적폐 청산의 상징이었던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조사는 시작만 요란했지 그 끝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전 정부가 민변 출신을 도배했다는 말은 여러 언론이 팩크체크해 거짓으로 드러났다.(매일경제 6월15일 “윤 ‘과거에는 민변이 인사 도배’ 사실일까”)

보수언론조차 대통령의 험한 입을 걱정할 지경이다. 동아일보는 6월18일 “‘민주당 땐 안 했나’ ‘그럼 하지 말까’ 대통령의 말 다듬어져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동아일보는 이 사설에서 “대통령이 가진 권한과 책임을 생각하면 한마디 한마디가 좀 더 신중하고 정제돼야 한다”며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설득하고, 특히 반대자도 이해시켜야 하는 자리”라고 비판했다. 이 사설이 쇠귀에 경 읽기가 안 됐으면 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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