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나는 여러 노조에서 조직혁신 정책을 자문한 경험이 있다. 열에 아홉은 문제점을 수십 개 나열한 후에 이것저것 다 “잘하자!”라는 파이팅만 남기고 논의가 끝난다. 당연히 실행은 어렵다. 문제의 우선도를 정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책임도 정확하게 부여하지 않아서다. 모든 게 문제라 모든 게 그대로여도 어쩔 수 없다. 모두의 책임이라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다.

현재 정의당이 딱 저런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가 된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터라 위기감은 상당하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기보단, 각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온갖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누가 책임을 지는 건지도 불분명하다.

정의당의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는 건 사회 변화를 염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다. 정의당의 문제는 진보진영 대부분이 공유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정의당이 사람들 눈에 가장 선명하게 보여서지, 정의당만 문제여서 비판이 쏟아지는 건 아니다. 애정을 가지고 정의당을 ‘잘’ 비판하는 게 필요한 때다. 정치적 책임이야 당 내부에서 해결할 문제지만, 문제의 본질에 관해서는 당 외부에서도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 논의를 보면, 진보정당 원로들부터 비례대표 의원들까지 “노동으로 돌아가자”라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노동에서 멀어져서 정의당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다. 딱히 반론이 나오진 않는다. 이대로 흘러가면 정의당 혁신안의 첫 번째 소제목은 ‘노동 중심성 회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진단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노동으로 돌아가자는 발상, 즉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앞세워 노동자 표를 조직한다는 생각에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우선 통일된 계급적 이해와 요구가 없어서다. 노노 갈등이 일상인 시대다. 같은 노동자라 부르는 게 민망할 정도로 소득 격차도 크다. 정규직화를 외치면 “불공정” “역차별”이란 말이 바로 튀어나온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원칙으로 삼는 정의당은 갈등의 현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대선에서 심상정 의원은 주 4일 근무제 공약을 내세웠다. 그런데 저소득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하기 위해 지금도 서로 경쟁한다. 주 4일제는 상층노동자에게나 먹힐 이야기지, 하층 동자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정의당은 이렇게 구체적 노동자에게 외면받는 정당이다.

정의당이 노동자의 집단적 지지를 끌어내려면. 각기 사정이 다른 노동자들을 ‘계급’으로 묶어 낼 만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국민경제 차원의 생산과 분배를 다루는 정부 ‘경제정책’이 이런 전략을 구체화한다. 사실 계급이라는 집단적 정체성 자체가 마르크스가 말했듯 자본주의적 생산과 분배의 결과다. 각자의 개성대로 사는 사람들이 노동자계급으로 모여 어떤 선택을 함께할 이유도 생산과 분배 외에는 딱히 없다.

그렇다면 정의당의 경제정책은 무엇이었나? 바로 당 강령에도 있는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이었다. 따져 보면 정의당 진짜 문제는 노동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이런 경제정책으로 노동자를 모으려 했다는 점에 있다.

‘소주성’은 간단히 말해 임금이 증가하면 소비가 증가하고, 나아가 생산성까지 상승해서 경제가 장기간 성장한다는 이론이다. 노동자의 계급적 사익인 총임금이 곧 공익이다. 취지는 참 좋다. 연봉 1억원인 정규직 노동자와 3천만원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자리 경쟁을 하지 말고, 모두 연봉 1억원 정규직이 돼 경제를 성장시키자는 이론이니 말이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기업도 생산성 향상의 이득을 얻는다.

하지만 ‘소주성’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경제가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투자를 결정하고 노동을 생산요소로 부릴 수 있어서 ‘자본’주의라 불린다. 이 점에서 주류 경제학은 솔직하다. 자본가의 계급적 사익인 이윤이 결과적으로 공익이라 주장하니 말이다. 기업 이윤 증가가 투자와 고용의 증가로, 장기적 생산성 혁신으로 이어진다. 물론 자본가의 사익 추구는 방종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지대 추구와 무질서가 주기적으로 문제가 된다. 그래서 케인스 이래 현대 경제학은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지지했다. 자본가의 “제한된” 사익만이 공익이다. 물론 그렇다고 현대 경제학이 ‘소주성’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노동(임금)이 주도해 투자를 이끈다면, 그 체제는 ‘노동주의’라 불러야 마땅하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주의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증거다.

정의당은 작동하지 않는 경제정책으로 노동자들을 모으려 한 꼴이었다. 물론 노동하는 사람의 지혜, 이윤 주도의 시장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이 쉽게 속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문재인 정부를 겪어 본 국민이다. 노동자 지지율에서도 정의당이 기존 양당에 앞서지 못한 이유다. 정의당은 노동에서 멀어져서 실패한 게 아니라, 노동을 속이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노동’으로 다시 향하자고 주장하는 정의당 당원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를 지원하고, 조직된 노조와 연계를 강화하며, 플랫폼 노동자 같은 취약 계층에 당이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자와 더 많이 접촉하는 건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당의 일상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지 ‘전략적’으로 당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소주성’ 또는 비슷한 맥락의 경제정책(예를 들면, 현대화폐이론을 근거로 한 재정적자 무시 정책)은 그대로 두고 노동을 다시 이야기하는 건 “같은 방법으로 다른 결과를 바라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당은 명시적인 ‘’소주성 폐기‘로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 ‘소주성’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아니겠지만, 모든 문제를 압축한 것이라 볼 수는 있다. 심지어 ‘소주성’은 정의당이 시도 때도 없이 더불어민주당 이중대로 전락하는 이유기도 하다. 노동을 계급으로 조직해 지지를 얻으려 해도 ‘소주성’과 질적으로 다른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 ‘소주성’을 버려야 노동으로 갈 수 있다.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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