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고백하자면 ‘워커홀릭‘이라는 말을 기분 좋게 듣던 시기가 있었다. 업무일정과 과업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또 그게 맞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출퇴근 버스에서 깨어나지 못해 종점까지 가기 일쑤였고, 택시에 짐짝처럼 실려 귀가하는 일도 잦았다. 문자 그대로 ‘뇌를 갈아 넣은’ 서면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고, 눈뜬 직후부터 눈감기 직전까지(가끔은 눈을 감고도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업무회로를 돌리며 누락된 것을 챙기고 떠오르는 문구를 쓰느라 스마트폰 메모장은 언제나 새로운 메모로 가득 찼다. 내가 몸과 마음을 가진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했고, 내 시간과 일상은 고무줄처럼 늘리거나 잘게 쪼개 필요한 때에 이어붙여도 된다고 여겼다. 필요한 일이고 보람도 있으니,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줄 알았다.

노동안전활동가 또는 노동변호사로서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부끄러운 시간을 말하는 이유는, ‘바짝’ 일하고 쉬면 된다는 무치한 언어가 한탄하며 비웃고 말 것이 아니라 국정 내용을 이루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인식이 비단 대통령의 것만은 아닌 듯하다. 인간의 몸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없이 일상과 시간을 분절해 ‘테트리스’처럼 끼워 맞춰도 된다는 위험한 생각이, 누구를 향해 표출되는지만 다를 뿐 우리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교과서적인 전개지만, 필자가 회심(?)하게 된 계기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면서 시작된 고민이었다. 노동시간이 단순히 수당으로 치환되는 임금계산의 영역이거나, 노사 간 교섭 내지 계약의 의제로서 당사자가 동의하거나 감수하면 되는 임의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몸과 삶에 대한 관점의 문제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법은 노동시간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우선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에 대한 법적 기준을 정한다. 불행히도 근로기준법은 안전과 보건에 관한 사항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다고만 할 뿐, 근로시간을 포함한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할 때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최저임금법이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정한다고 규정하는 것과 비교할 때,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규정에는 무언가 크게 빠져 있다. 노동부 재량으로 폭증하고 있는 특별연장근로 탓에 법이 정한 연장근로시간 기준(주 12시간)이 무력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별연장근로시 근로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건강검진을 실시하거나 휴식시간을 부여하는 정도만 마치 선심 쓰듯 언급돼 있을 뿐이다.

그나마 산업재해보상보험법하에서는 노동시간이 노동자의 몸과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한 고려가 있다. 흔히 과로산재라고 하는 뇌·심혈관계질환이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1주 평균 노동시간을 산정하고 건강부담이 큰 야간근무의 경우에는 가산하는 식으로 반영한다. 그러나 산재보험 영역에서 다뤄지는 노동시간은 이미 재해를 당한 노동자의 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정보일 뿐, 이를 통해 해당 사업장의 노동시간에 대한 감독 내지 시정이 이뤄지거나 그 노동을 여전히 감당하고 있는 남아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산업안전보건법은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보건에 관한 고려를 한 채 근로시간을 논하고 있을까. 일부 유해·위험 작업에 대한 근로시간을 제한하면서 작업과 휴식의 적정한 배분, 근로시간과 관련된 근로조건의 개선 등 근로자의 건강보호를 위한 조치 의무를 정하고, 근로자가 장시간 근로,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작업 등을 하는 경우 근로시간단축 등의 개선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근로시간과 관련된 근로조건을 개선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근로감독 과정에서 장시간 노동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과문한 탓인지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일반 근로감독관은 근로시간에 맞게 임금이 지급됐는지만 확인하고,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은 일부 존재하는 위와 같은 규정을 제대로 적용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우리다. 법정 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단축한 것이 2003년 근로기준법 개정 때였는데, 그 후로도 한참을 제대로 된 ‘주 40시간제’를 누리지 못하다가, 2018년 ‘주 52시간 상한제’가 근로시간단축이랍시고 환영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조차도 유연근로제라는 미명으로 흔들렸고, 급기야 주 120시간 바짝 일하자는 대통령에, 주 92시간 노동이 가능한 방안을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이라며 내세우는 고용노동부를 만났다.

노예가 아닌 인간인 우리는 이런 시간을 견딜 이유가 없다. 우리에게는 “근로시간을 구성할 때 안전과 건강에 대한 최저한도의 요건을 설정한다”는 유럽연합의 근로시간 지침과 같은 규범이,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될 수 있는 근로시간 기준이 필요하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관리·감독도 시급하다. 끝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만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과로산재 인정기준을 넘어서는 노동은 통제하는 것이 국가의 최소한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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