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는 6만여명(주최측 추산)이 참석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섭씨 33도를 옷돈 무더위에도 참석자들은 ‘물가폭등 못 살겠다’ ‘노동자는 죽어난다’는 문구가 양면에 인쇄된 손피켓을 머리 위로 연신 흔들었다고 이날 집회 모습을 매일노동뉴스는 4일 보도했다. 첫머리를 “이렇게는 못 살겠습니다. 불평등한 세상을 노동자와 민중의 힘으로 한 방에 엎어 버립시다”라고 시작한 뉴스 기사였다.

이렇게 취재 기사를 읽고서 이날 대회 장면을 그려 보자니 노동자들의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근래 찾아볼 수 없는 참석자수로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참석자수로 대회 분위기를 파악하려 든다면서 내 짐작을 비난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나는 뉴스 기사의 ‘6만명’에 솔직히 놀랐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때문인지 궁금했다. 어째서 “못 살겠다”는 것이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나는 궁금했다. 뉴스 기사들을 읽고, 대회를 주최한 민주노총의 보도자료를 읽었다. 읽고서 보니, 내가 읽은 뉴스 기사들 내용은 보도자료의 것과 같았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매일노동뉴스) “윤석열 정부 노동개악 저지”(경향신문) “경제위기에 노동자 죽어난다”(오마이뉴스) 이렇게 제목은 달리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주최측이 낸 보도자료의 내용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은 어째서 못 살겠다는 것이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살펴봐야겠다.

2. ‘물가폭등, 민생 대책 마련! 노동개악 저지! 사회공공성·국가책임 강화! 비정규직 철폐!’ 이것이 이날 전국노동자대회의 제목이고, 요구 내지 투쟁 구호였다.

이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월급 빼고 다 오른 세상. 일할수록 적자인 세상. 대출에는 이자 폭탄이 떨어지고, 장바구니에는 한숨만 가득한 세상인데 (윤석열) 정부는, 우리(노동자)를 외면하고, 비정규직이 천만인데 단 한마디 말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민영화로, 민간위탁으로 아예 비정규직 나라를 만들겠다”고 대회사를 했다. 계속해서 양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뜯어고쳐 “노동자들을 죽음의 시대로 돌아가라”하고 있다면서 “윤석열 정부에 엄중히 경고”한 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공공성을, 일하는 사람에게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서 양 위원장은 “경고가 쌓이면 다음은 퇴장”이라고 경고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출발한 지 아직 두 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쏟아놓는 반노동 정책은 이미 5년 치를 다 쏟아낸 것 같다고 일갈하며 윤석열 정부를 반노동 친재벌 정권, 과로사 정권, 최악의 민영화 정권이라 규정하고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반노동 친재벌, 민영화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을 서두에 꺼내며 어려워지는 물가 전망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삶이 옥죄이고 있는 와중에도 최대의 이익을 올리고 있는 재벌·대기업에 갖가지 혜택으로 곳간을 채워 주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현실을 규탄했다.

3. 최근 물가대책과 관련해 추경호 부총리가 기업들에 임금인상 자제를 주문했던 것이 언론에 크게 보도돼 논란이 됐다. 물가폭등에 대한 정부 대책이 임금인상 억제라니 고물가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사용자 자본이 떠안아야 할 부담까지 전가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부동산세·법인세 등 각종 부자감세를 추진하면서도 이렇게 노동자에 대해서는 임금인상을 억압하는 정책이라니. 노골적인 친기업 내지 친자본의 행태에 낯이 뜨거울 지경이다. 거창하게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119조2항까지 인용하면서 말하고 싶지 않다. 최소한 노동자를 대통령 선거권자인 국민 여러분, 수시로 존경한다는 국민 여러분으로 취급한다면 이렇게 자본에 대해 노동을 차별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 여러분으로 취급했다면 물가가 폭등해서 생계가 어려워질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해 주도록 기업을 찾아다니며 사용자 자본을 상대로 임금인상을 설득하거나 국가가 지원해 줄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균형 있는 경제 성장’ ‘적정한 소득의 분배’ ‘경제력의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 ‘경제의 민주화’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 등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적인 경제질서 규정에서 사용한 개념 하나만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자라면 물가 대책으로 노동자 임금억제를 감히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관한 고용노동부 장관의 공개적인 설명을 정부 내 비공식적인 의견에 불과한 것을 취급한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에 관해 연장근로시간을 현행 주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로 파악해 관리하는 것으로 추진하겠다고 이정식 장관이 보도자료까지 내 언론에 대대적으로 설명했다. 월 단위로 관리하게 되면 특정한 주에 92시간까지 근로해도 주 52시간제 위반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 보도자료에서는 이 나라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고 통계 자료를 통해 밝혀 놓았다. 그러면서도 주 52시간 상한제를 현행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니 장시간 근로시간 실태 등 진단과 대책이 엉뚱하다. 독일이 어떻고, 일본이 어떻다고 주단위로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례를 들고 있는데 어떻게 현재의 주 단위로 하던 걸 월 단위로 하는 것이 장시간 근로에 대한 대책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정말로 OECD 2위인 장시간 근로를 단축해야 한다고 본다면, 대책은 간단하다. 연장근로까지 포함한 현행 52시간 상한제를 단축하면 된다. 만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현행 52시간 상한제를 단축하겠다고 했다면, 주 44시간·40시간 등으로 단축하겠다면서 노사합의를 통해 월 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을 대책으로 내놨다면 지금보다는 노동자들의 반발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서는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 없이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에 내모는 것이었으니 이를 두고서 이 나라 노동자들이 노동개악이라며 저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공연히 문제가 많은 법이라며 개정하겠다고 했었다. 입법 시행된 이후에 개정 요구가 많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사용자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개정을 요구했다. 이러한 개정 요구 중 윤석열 정부의 추진 방향은 사용자 기업의 요구를 받드는 것이다. 도대체가 어느 하나 사용자 자본과 노동의 이해와 요구가 엇갈리는 경우 노동을 받드는 걸 보지 못했다. 이 지경이라면, 윤석열 정부에서 노사 간 대화 내지 협상을 통해서 노동정책을 마련한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해마다 수천 명이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나라를 더는 방치할 수 없어서 마련한 법인데, 이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중대산업재해 발생은 여전하다. 어떻게 중대재해의 발생을 억제할 것인지를 두고서 입법과 집행을 고민해야 마땅했다. 국가의 입법과 집행이 대책일 수밖에 없는데, 단순히 사용자 기업을 상대로 한 홍보와 지원을 대책으로 내세운다면 그건 사용자 기업을 위해서 정부가 방치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대책은 나온 게 없다. 친기업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문제에 관해서 대책을 발표할 때면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아무런 대책도 발표하지 않는 게 고마울 지경인데, 사실 무대책은 방치다. 대회사를 통해서 민주노총 위원장이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 “비정규직이 천만인데 단 한마디 말도, 아무런 대책도 없다”고 비판했는데, 바로 이러한 현실을 말한 것이다. 여기에 민영화·민간위탁이 추진되면 그동안 해 왔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그 방향을 잃게 될 것이 뻔하다.

4. 이상과 같이 이번 전국노동자대회를 읽어 보면, 참석 노동자들은 지난 2개월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정책은 사용자 기업을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하면서 노동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대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정부정책이 반노동이라고 비판했고, 이와 관련해서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윤석열 정부에 이러저런 경고를 하고서 “경고가 쌓이면 다음은 퇴장”이라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이번 전국노동자대회는 노동자에 반해서 사용자 자본을 위한 정책에 몰두하는 권력을 향한 경고였던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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