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미국과 서방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혐오와 증오(disgust and hatred)를 증폭시키고 있다. 자신들은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천사의 나라’고, 중국과 러시아는 자유와 인권을 파괴하는 ‘악마의 나라’라는 세뇌 공작을 펼쳐 왔다. 이 공작은 거대 자본이 통제하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수행되고 있다. ‘기레기’와 ‘조중동’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글로벌 현상이다.

미국과 서방이 혐오와 증오를 퍼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추세라면 향후 10년 안에 중국은 세계 경제 1위가 된다. 게다가 소련 붕괴로 망가진 줄 알았던 러시아가 지정학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한국과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비슷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상대로 몇 달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전략가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차단하기 위해 군사적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린 지 오래다. 국내적으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자국민들로 하여금 적국을 악마라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자국군이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천사’라 세뇌시켜야 한다. 국민 다수가 자국을 정의의 편이라 착각하면서 자국군이 악마를 처단하는 역사적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믿게 될 때 전쟁은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여기서 누가 먼저 총을 쏘느냐는 부차적 문제다. 유증기가 가득 찼음에도 창문을 일부러 밀폐시켜 놓은 공간에서는 불씨 하나에도 대폭발이 일어난다. 그 불씨가 누구의 라이터에서 켜졌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유증기를 지속적으로 주입한 이가 누구인지, 유증기가 가득 찼음에도 창문을 열지 못하게 꽁꽁 닫아 놓도록 한 이가 누구인지를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수십만 명의 자국민 무슬림을 재교육 캠프에 넣었다는 보고서가 있다면, 미국 정부가 자국이 관할하는 관타나모 해군기지에서 수천 명의 타국민 무슬림을 고문했다는 보고서가 존재한다. 중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자국민 무슬림을 탄압하고 강제노동을 시킨다는 보고서가 있다면, 미국 정부가 민영화한(privatized) 교도소에 자국의 하층민과 흑인들을 부당하게 잡아넣고 강제노동을 시킨다는 보고서도 있다.

나토 회원국인 영국이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막기 위해 아일랜드인을 상대로 국가 테러를 자행했다는 보고서가 존재한다. 스페인이 바스크 지역의 독립을 막기 위해 소수민족을 상대로 국가 테러를 자행한다는 보고서가 있다. 세계 최대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인디아에서는 무슬림 다수 지역인 카슈미르 지역에 국가 테러가 자행되고 있다는 보고서가 존재한다. 미국과 나토의 군대가 관할하던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공군기지와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포로를 상대로 고문이 조직적으로 자행됐다는 보고서와 언론보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범죄자로 처벌된 적이 없다.

미국과 서방이 중국과 러시아를 ‘악마화(demonizing)’하는 수단인 자유와 인권은 상대적이고 역사적인 가치다. 중국과 러시아에 자유와 인권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히 미국과 서방에도 동일한 문제가 존재한다. 민주주의도 역사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다. 현실적 한계를 초월하는 절대적 가치의 민주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자유와 인권이 갖고 있는 본질적 문제는 강자와 부자만이 자유와 인권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약자와 빈자가 누리는 자유와 인권은 그 양과 질에서 부실하기 짝이 없다. 신장 위구르 지역의 무슬림과 미국과 서방(과 한국)의 무슬림을 비교하면 누가 더 많은 종교적 자유를 누릴까. 중국과 러시아의 빈민과 미국과 서방(과 한국)의 빈민을 비교하면 누가 더 많은 자유와 인권을 누릴까.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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