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노·사·정이 자신에게 난처하게 작동할 수 있는 사실은 감춘 채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를 방지하고, 상황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전제 하나를 깐다. 대한민국의 2021년 국내총생산(GDP)은 2천57조원이었고, 국민총소득(GNI)은 2천82조원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국민총소득 전액을 당해 취업자가 균등하게 나눈다고 가정해 봤다. 당해 취업자는 총 2천700만명이었다. 국민총소득을 취업자로 나누니, 1인당 받을 수 있는 금액은 7천700만원이었다. 즉 한 푼도 생산 및 유통에 재투자하지 않은 채 개인 소득으로만 나눈다는 불가능한 가정에서도 1인당 8천만원에 미치지 못했다. 매년 개인에게 실제 분배되는 비중은 1천조원에 미치지 않는다. 1천조원이라고 퉁 치고 취업자에게 나누면, 1인당 균등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금액은 3천700만원이다. 따라서 누군가 그 이상 가져가면 다른 누군가는 그 이하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자 절반의 연소득이 3천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다. 연 4천만원 이상 받아가는 계층이 누군지, 노·사·정 모두는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난처하게 작동하는 사실은 뒤로 감춘 채 상대방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 상황만 취사선택해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최저임금을 더 많이 올려야 한다는 양대 노총 주장은 옳다. 그러나 양대 노총은 최저임금을 더 많이 올려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 최저임금과 비교해서 상층노동의 임금이 과하게 많다는 점은 얘기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연대하며 하후상박하자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상층노동이 양대 노총의 주력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 소상공인에게 부담이 된다는 경영계 주장도 옳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경영계조차 상층노동의 과도한 임금인상 때문에 최저임금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율하기 어렵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상층노동의 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노무담당인 자신의 임금도 대폭 인상되기 때문이다. 상층노동의 임금을 거론하면 최상위 1%의 과도한 소득 점유율, 그중에서도 재벌의 과소득 문제로 확전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경총과의 간담회에서 일부 정보기술기업과 대기업 중심으로 높은 임금인상 경향이 나타나면서 여타 기업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한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도 옳다. 그러나 추경호 장관은 상층노동의 임금인상만 지적했고, 과도한 자본소득 및 최상위 1%의 소득집중을 제어하자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상층노동의 임금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율할 수 없다는 점을 말하지 않는다.

노·사·정 각각의 이러한 태도로는 최저임금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최저임금 협상 막판에 민주노총과 경영계는 퇴장하고 규탄 성명서 내는 행태가 해마다 반복될 뿐이다. 애꿎은 최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소상공인이 사회적 갈등의 당사자로 호출돼 을들의 갈등 양 축을 형성하는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다. 노·사·정의 그런 무책임한 태도로는 최저임금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최저임금 해법은 양대 노총 투쟁이나 경영계 및 정부의 압박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상위 1%가 총소득의 14.7퍼센트를 점유하고, 상층노동의 다수가 포함된 차상위 9%가 31.8퍼센트를 점유하는, 그래서 상위 10%가 무려 46.5퍼센트를 점유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인 그런 문제다. 노동계는 제힘으로 차상위 9%의 소득점유율을 더 높이면서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지언정 낮출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경영계도 제힘으로 최상위 1%의 점유율을 낮출 수 없다. 노·사·정이 기적처럼 방향을 잡는다고 해도 단기적으로는 급격하게 조정할 수도 없는 문제다. 족히 20~30년은 걸리는 문제다.

정부 및 경영계는 최상위 1%의 소득점유율 조정에 동의하고, 노동계는 차상위 9%의 소득점유율 조정에 동의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제안한다. 국회는 소득세 구간을 정비해야 한다. 정부는 차상위 9%의 소득점유율 조정에 따른 동시 정책으로 사회복지 및 안전망을 강화하면서 상층노동의 과도한 임금인상 욕구를 가라앉혀야 한다. 양대 노총은 최저임금을 정말로 더 많이 인상하려면 민중의 한 축인 소상공인의 어려움에 화답하는 최저임금연대기금을 결의하고 앞장서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은 노·사·정만 참여해서 진행할 수도 있고, 진짜 영세 상공인 및 최저임금 노동자와 국회·언론·전문가 등 각계각층이 참여·참관해서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만의 문제가 아니고, 극심한 불평등 구조를 순화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타협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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