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4월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의 인사·노무 실무자를 대상으로 새 정부가 가장 우선 다뤄야 할 노동현안을 물었다. 응답자들 중 가장 많은 사람이 꼽은 현안은 근로시간 유연화(27.9%)였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이달 23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새 정부 노동개혁 과제로 1주 12시간을 상한으로 하는 연장근로시간 산정을 월 단위로 바꿔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겠다 발표했다. 많은 언론에서 “한 주 최대 92시간 근로”가 가능해질 것이라 비판하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근로시간 상한제를 무력화하고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강요한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언론과 노동계의 비판에 직면한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이 컸는지 24일 출근하면서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같은날 집권여당의 실세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전날 노동시간을 좀 유연화하겠다는 노동부 방침에 대해 “대다수 기업과 근로자가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보면 확정된 안은 아니라고 하지만 주 52시간제를 손봐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는 문제에 집권여당이 주요 과제로 힘을 쏟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의 기획대로라면 연장근로시간 산정 기준이 월 단위로 변경되면 업무강도가 증가해 노동자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포착되지 않는 숨은 노동이 증가해 실근로시간이 늘어나지만 가산수당을 지급받지 못해 노동의 가치가 감소하는 점은 더욱 우려스럽다.

업무가 집중되는 특정 시간에 최대한 일을 하고 한가한 시간에 일찍 퇴근하는 등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해 노동자의 시간 주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상담사례로 볼 때 한가한 시간에 소정근로를 제한하고 휴식할 수 있다는 말을 믿기는 어렵다.

2018년 7월 300명 이상 사업장부터 주 52시간제가 실시된 이후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본격적인 불만은 50명 이상 300명 미만의 중소업체에 주 52시간제가 적용된 2020년부터 터져 나왔다. 상담을 하다 보면 사업주는 연장근로를 시킬 수 없어 납기일을 맞추기 어렵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노동자는 고정 연장근로가 줄어 실질임금이 줄었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소규모 제조업체나 서비스업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주중 1일 3시간씩 수요일을 제외한 4일의 연장근로에 토요일 8시간 연장근로를 하거나, 주중 4시간씩 4일에서 5일을 초과근로해 1주 20시간의 연장근로를 했다. 국가산업단지 제조업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주 5일에서 6일을 근무일로 주야 맞교대를 할 경우 1주 20~24시간의 연장근로를 했다. 이를 12시간으로 줄이게 되니 1주 8시간, 한 달 4.34주로 35시간에서 43시간에 대한 연장근로 수당이 깎였다. 2020년 당시 최저임금 시간급 8천590원 기준으로 1.5배를 가산하면 월 약 45만원에서 약 60만이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주 52시간제 무력화를 두고 근로자도 찬성한다고 주장하는 자신감의 배경에는 연장근로로 가정경제를 꾸릴 수밖에 없는 중소업체 노동자들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에게 다시금 빡빡한 한 주 60시간 넘게 노동하는 일터로 돌아가도 되겠느냐 묻는다면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 대답할 것이라 확신한다. 주 52시간제 시행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이를 증명한다.

 

주 52시간제를 시행한 직후인 2018년 8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노동시간단축에 대한 인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2%가 노동시간단축을 ‘잘된 일’이라 평가했다. ‘잘못된 일’이라 평가한 응답은 28.5%에 그쳤다. 제도 도입 2년 뒤인 2020년 5월 국회사무처의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국민이 뽑은 20대 국회 사회환경 분야 좋은 입법 내용으로 노동시간단축과 관련된 주 52시간제 시행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1위로 선정됐다. 5명 이상 사업장 주 52시간제 전면시행에 즈음해 노동부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77.8%는 주 52시간제 시행을 ‘잘한 일’로 평가했다.

일과 직장에 대한 국민들의 변화된 인식 역시 장시간 근로로 경제를 지탱하는 구시대적 제도로 대한민국을 끌어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노동부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절반 이상인 55.8%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일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인식했고, 초과근무를 해서 임금을 더 받고 싶다는 의견(23.5%)보다 정시퇴근해 여가를 즐기겠다는 의견(76.1%)이 3배 이상 많았다.

노사 간에 균형을 맞춰야 할 정부·여당이 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 사회가 합의한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는 개악 시도에 노동자의 이익을 들먹이는 일은 비열하다. 경제단체와 정부는 중소기업 인력난이 주 52시간제로 임금이 줄어서 그렇다는 식의 거짓 선동을 멈춰야 한다. 퇴근 전에 잔업이 공지되고, 연차휴가 사용도 눈치 주는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숨 막히는 일터부터 혁신하길 바란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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