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때문이다.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의 반복된 경고에도 나토 확장을 밀어붙였다. 푸틴의 개인적 심리나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아니라 미국이 주도한 나토 확장이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만들었다.

현상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군사적 충돌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동맹체인 나토와 이에 대항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통해 벌이는 일종의 대리전쟁(a proxy war)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침공은 소련 붕괴 이후 지난 30년 동안 지속해 온 미국과 나토의 적대 행위에 대한 러시아의 공세적 대응이다.

미국이 지배하는 나토와 러시아의 대결이 세계전쟁으로 치닫는 지정학적으로 민감하고 급박한 시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들러리’로 참가했다. 28~30일까지 열리는 이번 나토 정상회의의 목표는 반러시아에 그치지 않고 반중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① 나토의 장기적 억제력과 방어력 강화 ② 우크라이나를 위한 지원 지속 ③ 나토의 2022년 전략적 개념 개시 ④ 파트너십 강화와 개방성 유지 ⑤ 모든 방면에서의 위협과 도전에 적응 ⑥ 대서양 단결과 동맹 연대 6개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참가, 즉 대한민국과 나토의 관계 강화는 나토의 “파트너십과 개방성” 의제와 관련이 있다. 나토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기존 파트너인 호주에 더해, 일본·한국·뉴질랜드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나토의 동진이 러시아 서쪽에서 멈추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같은 마음을 가진 파트너들(like-minded partners)”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나토는 자기 이름에 붙은 북대서양(North Atlantic)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러한 나토의 글로벌화는 러시아에 대한 대항을 넘어 중국에 대한 대항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북대서양 지역을 초월해 글로벌 수준의 반러시아 전선과 반중국 전선 연결로 귀결되고 있다.

문제는 “같은 마음을 가진 파트너들”을 이끄는 주도국들이 제국주의 식민지배의 경험을 공유하는 앵글로색슨 중심의 백인 국가라는 점이다. 나토의 “파트너십과 개방성”에 참여하는 제3세계 국가는 없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은 초청받지 못했다. 물론 초청장이 왔더라도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시아의 전통적 대국인 인디아도 참가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도 보이지 않는다. 나토 회의 직전 브라질·러시아·인디아·남아프리카공화국·중국이 주도하는 브릭스(BRICS) 회의가 열려 다자주의 국제질서의 중요성을 재차 천명한 사건은 상징적이다.

나토 정상회의는 “파트너십과 개방성”이라는 미사여구에도 미국을 지지하는 북반구(the Global North) 대 러시아와 중국을 지지하는 남반구((the Global South) 사이의 지정학적 대립과 군사적 갈등을 본격화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토가 “같은 마음을 지닌 파트너들”로 일본과 한국을 치켜세우면서 사상 처음으로 이들 나라의 국가 수반을 참가시킨 이유는 일본과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마음을 지닌 적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러시아와 중국 같은 권위주의 체제(authoritarian regimes)가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를 안전하게 해 줬던 글로벌 규칙과 토대를 뒤흔들고 있다”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주장했다.

그는 마드리드 정상회의가 “변혁적(transformative)”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지금까지의 틀을 깨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세계화(Globalization)의 기치 아래 작동하던 글로벌 공급 사슬을 미국이 주도하는 북반구 공급 사슬과 중국이 주도하는 남반구 공급 사슬로 분리시키고, 이를 통해 중국이 미국과 유럽을 뛰어넘는 경제대국이 되는 상황을 경제적 수단을 넘어 군사적 조치를 동원해서라도 예방하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1933년 6월12일부터 7월27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세계경제회의(World Economic Conference)가 열렸다. 회의는 1929년 시작된 대공황에 대항하고 국제무역을 되살리며 환율을 안정시킨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 노력들이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어떠한 합의도 거부했고, 세계경제회의는 결국 실패했다. 이후 국제무역체제는 급격하게 분열됐다. 미국(달러)·영국(파운드)·프랑스(프랑)·독일(마르크)·이탈리아(리라)·일본(엔)은 제국주의 식민체제를 활용해 자체 통화 블록을 강화하면서 군비 경쟁에 돌입했다. 1930년대 내내 전 세계는 크고 작은 전쟁에 시달렸고, 이렇게 축적된 군국주의 에너지는 2차 대전으로 폭발했다.

나토 정상회의가 목표로 하는 지정학적 블록화는 1933년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경제회의의 실패가 초래한 지정학적 블록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을 내세웠던 유럽연합(EU)은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확장에 압도되면서 ‘군국주의적 유럽(Militaristic Europe)’으로 전락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충돌을 조정해 왔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자기 소임을 포기하고 나토에 가입함으로써 “사회민주주의 중립국”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끄는 우익 정권은 나토 회의 참가를 통해 노태우 정권 이후 한국 정부가 견지해 왔던 ‘중립’ 노선을 완전히 내버리고 반러·반중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 급격한 정책 선회는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수준에서 경제적 갈등과 군사적 갈등을 격화시킴으로써 대한민국 군인은 물론 평범한 국민까지도 지정학적 군사 충돌의 희생양으로 내몰 것이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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