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후 만취한 경찰공무원이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가 추락했더라도 업무상 회식에 따른 사고이므로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조국인 판사)은 지난 10일 경찰공무원 A(32)씨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공무상요양 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인사혁신처가 항소하지 않아 지난 28일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만취해 엘리베이터 문 ‘강제 개방’

인천의 한 경찰서 지구대 소속인 A씨는 2018년 2월1일 오후 8시30분께 신임 지구대장이 주최한 전입직원 환영 전체회식에 참석했다. 평소 소주 1병 정도가 주량인 A씨는 빠른 속도로 마셔서 만취했다. 결국 2시간 뒤 회식을 마치고 아파트로 귀가하던 중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A씨는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발로 차는 등 문을 강제로 열고 발을 내디뎌 지하 2층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개방성 두개골 골절 등 뇌 손상을 입었다. 이후 인사혁신처에 공무상요양 승인신청을 했지만 거부됐다. 인사혁신처는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사고인 데다 정상적인 퇴근 중에 발생한 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했다.

재심 역시 거부되자 A씨는 지난해 12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상급자 만류에도 자발적으로 과음했는지 여부 △고의·과실에 따른 사고 여부 △정상적인 퇴근 중 입은 부상 여부 등이 다퉈졌다. A씨측은 “공적 행사인 회식 후 통상적인 방법과 경로에 따라 퇴근하다가 과음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회식은 공적 행사이므로 A씨의 사고는 ‘공무상 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회식은 모임의 전반적인 과정이 지구대장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서 이뤄진 공무수행의 연장행위”라고 판시했다. 팀원 전원이 회식에 참석했고, 직원들이 의무적으로 낸 비용으로 회식한 부분을 근거로 삼았다.

“독자적 과음 아냐, 심신장애 상태”

아울러 의사 소견을 토대로 과음으로 인한 사고라고 인정했다. 법원 감정의는 “술에 취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지 않자 문을 걷어차 고장으로 열린 상태에서 바닥에 추락한 A씨의 행위는 알코올에 의해 통제력이 약화된 심신미약 상태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재판부는 “과음행위가 소속 기관장의 만류나 제지에도 A씨 자신의 독자적이고 자발적인 결단에 따라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며 “과음으로 인한 심신장애와 무관한 다른 비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사고가 발생한 사정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비정상적인 경로로 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라는 인사혁신처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A씨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방법을 이용해 사고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공무의 일환으로 참석한 회식에서 과음으로 정상적인 판단 능력에 장애가 생긴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라고 설명했다.

A씨를 대리한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회식의 업무 관련성은 인사혁신처도 인정했다”며 “다소 무모해 보이는 행동이 업무상 회식에 따른 음주의 결과물이라면 자발적이고 독자적으로 과음한 것이 아닌 이상 공무원 재해보상법상 공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확고한 태도가 이번 판결로 또다시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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