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에게 노동자 휴게실 설치 의무를 부여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8월18일 시행된다. 상시근로자 20명 이상 사업장과 공사금액 20억원 이상인 건설업 사업장은 최소 6제곱미터(약 2평) 이상 규모의 휴게실을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2평 남짓한 이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 노동이 있다. 노동자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닌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다. 기업은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수익을 내지만 쉼터를 책임질 필요는 없다.

법 사각지대 속 대리운전 노동자는 보도블록 위에 서서, 운 좋게 만난 야외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린다. 한여름 땀에 흠뻑 젖은 배달노동자의 쉼터는 길이 60센티미터 폭 36센티미터의 오토바이 시트다. 더위를 식히려 쿨토시·쿨시트·얼음팩으로 무장해도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해 생기는 소금꽃을 지울 길이 없다. 밤에 출근하고 해 뜨면 퇴근하는 야간 이동노동자의 건강 우려는 더욱 심각하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이동노동자의 빼앗긴 쉼터를 되찾아 주려 이동노동자 쉼터를 늘리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쉼터 증가 속도는 늘어나는 이동·플랫폼 노동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나마 있는 쉼터도 노동형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이용률이 저조한 경우가 많다.

26일 <매일노동뉴스>가 이동노동자의 빼앗긴 권리, 휴게권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전국 이동노동자 쉼터 실태를 분석했다.

쉼터 접근성, 운명 갈랐다

6월 현재 전국 이동노동자 쉼터는 31곳으로 서울시(8곳)와 경기도(10곳)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두 지역 이동노동자 쉼터 18곳의 5월 하루 평균 이용자는 31명에 그쳤다. 하루 이용자수는 쉼터에 따라 5명에서 152명까지 차이가 났다. 차이를 만든 이유는 쉼터의 접근성과 운영시간, 주차 가능 여부, 쉼터 이용 분위기 등이다. 시설의 규모나 쾌적함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종사자 의견을 수렴해 활용도가 높은 쉼터 구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하루 평균 이용자가 가장 적은 곳은 서울 도봉구 간이쉼터와 강서휴쉼터로 하루 대여섯 명이 찾는다. 가장 많은 이동노동자가 찾는 쉼터는 경기도 고양시 이동노동자휴다방(장항동)으로 5월에 하루 평균 152명이 찾았다. 상권에 얼마나 근접하게 위치했는지가 이들 쉼터의 운명을 갈랐다.

가장 많은 방문객수를 기록한 고양시 이동노동자휴다방은 문화·상업공간이 합쳐진 시설 ‘라페스타’ 인근에 위치해 있다. 음식점과 상점이 밀집돼 있어 유동인구가 많다. 짬을 내 쉬기보다는 콜이 들어오길 기다리며 쉬는 배달노동자나 대리운전 노동자가 많이 찾는 이유다.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돼 점심 피크타임에 일한 뒤 저녁에 퇴근하는 배달노동자와 저녁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는 대리운전 노동자를 모두 사로잡았다.

반면 도봉구 간이쉼터와 강서휴쉼터는 상권 밖 인적이 드문 주차장, 공사장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두 쉼터는 오전에 문을 열어 저녁까지 하루 8시간 동안만 운영됐다. 안마기나 TV 등 편의시설이 있지만 시설 비치 여부는 이용자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수도권 쉼터 중 방문자수(42명)가 네 번째로 많은 경기이동노동자 수원쉼터 관리자는 “제일 중요한 것은 접근성인데 도심지 쉼터는 주차 공간에 한계가 있어 부지 확보가 용이치 않다”고 설명했다.

날씨도 변수 중 하나다. 밖에서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한겨울·한여름에는 쉼터 이용자수가 느는데, 서초쉼터를 예로 보면 지난 1·2월 하루 평균 100명이 넘는 이동노동자가 방문했지만, 3월(83명)부터 줄어 5월 41명으로 감소했다.

▲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이동노동자 쉼터인데 찾지 않거나, 못 찾거나”

이동노동자 쉼터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대리운전 노동자나 배달노동자뿐 아니라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등 이동노동자라면 누구든 쉼터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들 숫자에 비하면 쉼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주요 쉼터 이용층인 대리운전기사만 2020년 기준 16만3천500명으로, 쉼터 한 곳당 5천274명이 써야 하는 셈이다. 고정된 사업장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플랫폼 노동자도 계속 증가세다.

하지만 이용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하면서 노동자들은 이동노동자 쉼터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홍창의 배달플랫폼노조 위원장은 “보통 라이더들은 자신이 일하는 반경 안에서 움직이지, 굳이 쉬기 위해 이동하지 않는다”며 “쉼터를 거점 한 곳에 훌륭하게 만드는 것보다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작은 규모로 여러 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쾌적한 쉼터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여름철에는 폭염 또는 폭우에 대피해 쉴 공간이 필요한데 거기에 적합한 시설이 필요하다”며 “기존 이동노동자 쉼터는 길을 헤매다 비에 다 젖은 몸으로 들어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상국 전국연대노조 플랫폼운전자지부장은 “쉼터는 지자체에서 직영하거나 노동권익센터 같은 중간지원기관이 위탁운영하는데 현장의 목소리를 기민하게 반영하기는 어렵다”며 “쉼터는 노동자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하는데 (시설) 관리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공간을 쓰면서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배달노동자 A씨도 같은 의견을 냈다. A씨는 “쉼터에 가면 계속 뭘 적어야 한다”며 “이용객 통계를 내기 위해 그러는 것이지만 개인정보를 적는 것이 라이더 입장에서 유쾌하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시설 관리자 입장에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니까 시설물을 깨끗이 쓰라고 하는데, 잔소리를 하는 것 같은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선의’에 기댄 쉼터
지속가능하지 않아

서울시는 현장의 의견을 일부 수용해 기존 건물을 임대해 쓰는 고정형 쉼터가 아닌 간이쉼터(컨테이너)를 확대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뜻대로 되고 있지 않다. 지난해 서울시가 낸 간이쉼터 지원 공모에 지원한 자치구는 세 곳뿐이다. 서울시 노동권익팀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간이쉼터 공모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간이쉼터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수요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2020년 서울시는 2023년까지 서울 25개 자치구에 간이쉼터를 만들겠다고 계획했다. 이대로면 실현이 어렵다.

노원구는 지난해 11월 서울시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이동노동자 쉼터 두 곳을 마련했지만 1~3개월 만에 이용자수가 적어 문을 닫았다.

이상국 지부장은 “자치구에는 이동노동자 쉼터를 담당할 마땅한 부서가 없는 경우도 있다”며 “명확한 담당 부서가 없는데 (이동노동자 쉼터를 만들면) 가외 업무가 늘어나니 기초자치구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자치구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고 섣불리 간이쉼터를 열었다가 예산 지원이 끊길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동노동자 쉼터 사업은 지방보조금으로 운영되는데 운영 실적이 저조하면 추가 예산편성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A구청 관계자는 “현재 서울시 사업은 시범사업인데 지속적인 예산지원이 되면 구에서도 (사업 시행) 검토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자치구마다 상황이 다르니 좀 더 다양한 콘셉트로 유연화된 시도를 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달플랫폼노조
배달플랫폼노조

“현장 경험·상상력 들을 때 새 시도 가능”

지자체가 ‘선의’로 주도하는 이동노동자 쉼터 사업은 이용자 의견을 반영하지 않으면 한계에 봉착한다. 다행히 문제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있다. 제도의 틈을 종사자들이 현장에서 느낀 아이디어로 메우는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배달플랫폼노조는 부족한 쉼터를 대신할 자체 휴게실을 만들었다.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월세를 내고 서울 마포구와 중랑구, 경기도 부천시에 휴게공간을 빌린 것이다. 비조합원도 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쉼터처럼 쾌적하지는 않아도 마음 편히 찾을 수 있는 ‘라이더 사랑방’이 됐다. 홍창의 위원장은 “부천에는 오토바이를 정비할 수 있는 분이 있어서 배달노동자 오토바이를 봐주고 있다”며 “엔진오일 가는 데 시중에서는 1만5천원을 받는다면 그곳에서는 1만원에 갈아 주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대리기사의 이동수단인 셔틀버스와 쉼터가 결합된 ‘심야 이동형 건강쉼터’를 시범운영했다. 대리운전 노동자는 대중교통이 끊긴 심야시간 고객이 있는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 셔틀 이용이 불가피한데 무료로 이동수단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핵심이다.

송명진 공제회 사무국장은 “이용자에게 온열 수면 안대와 무릎담요, 음료 등을 제공하고 이용 전후 신체상태 정보를 축적하기 위해 스마트워치로 심박수를 쟀는데 휴식이 건강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공적 공간을 활용하자는 제안도 있다. 홍창의 위원장은 “조합원들은 지역 동사무소에 휴게공간을 만들 수 없느냐고 제안한다”고 전했다. 정하나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휴게실이 마련돼 있다고 하더라도 시설이 정말 많지 않으면 수수료를 받아 생활하는 특수고용직은 사용하기 힘들다”며 “노동자가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인근 카페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을 일부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동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이익을 얻으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사업주에게 비용을 부담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비용부담은 기업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최근 티맵모빌리티와 부산바로고 등 일부 플랫폼기업은 고용노동부가 공고한 플랫폼 종사자 일터개선 지원사업에 지원해 자발적으로 종사자 휴게시설을 마련 중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노동력을 이용하는 기업도 대기공간 마련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기금 조성하든지 해서 쉼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정 사업장 없이 거리를 떠도는 이동노동자에게 쉼터는 쉬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동료 노동자와 연결되는 ‘커뮤니티’이자, 특수고용직인 탓에 혼자 처리·감당해야 하는 세무·노무지원 등을 언제든 원하면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이동노동자 쉼터가 목표를 분명히 하고 문턱을 낮추면 언제든 가능해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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