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

지난해 6월22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문(이하 사회적 합의)이 도출된 지 1년이 막 지났다. 사회적 합의는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과로사로 이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택배노동자 당사자들의 절박한 요구와, 택배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근본적 책임이 있는 원청 재벌택배사가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는 조건에서 추진됐다.

사회적 합의는 분류작업 수행의무를 사용자로 명시하고 이에 대한 대책(분류인력 투입과 택배요금 인상)까지 적시해 노동시간단축의 실질적 방도를 담고 있다. 산재 및 고용보험료의 사용자 부담, 기존의 갑질 위수탁계약서가 아닌 노동자의 권리가 담긴 표준계약서의 도입, 주 5일제 시범사업 추진 등을 담고 있다.

사회적 합의 이후 1년은 이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는 국면으로, 평가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현장에는 분류인력이 투입되는 등 많은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산재·고용보험에 대한 부담도 사라지고, 표준계약서도 도입되는 추세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이행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현장에서는 합의가 이행되지 않거나 꼼수가 발생하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사회적 합의 ‘이행’을 강제할 역량인 노동조합의 존재 여부가 중요해지고 있다.

과로사 해결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지지여론은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데 매우 큰 동력이 됐다. 그에 비해 이행 국면에서는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원청 재벌택배사들은 쓰나미와 같았을 노동환경 개선 요구에 밀려 사회적 합의문에 서명했지만, 이행 국면에 들어서서 반격을 감행했다. 사회적 합의와 달리 장시간 노동을 부추겼던 CJ대한통운의 부속합의서 강행 등은 사회적 합의 파기로 볼 수 있는 행태였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 이행을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택배·파리바게뜨·국민건강보험공단콜센터 등과 관련해 노동조합과 연대단체들의 피나는 투쟁으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졌지만 이행 과정에서 파기되거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위노조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과제다. 민주노총과 제 진보정당이 자신들의 전략적 과제로 설정하고 투쟁해 나가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완전히 이행된 올해 1월1일 이후에도 세 분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 돌아가셨고 한 분의 택배노동자가 쓰러졌다. 여전히 고강도·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올해 1월 사회적 합의 이행점검을 진행하고 그 결과로 택배사들의 이행실태가 ‘양호’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정부가 재벌택배사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과 같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현장에 정착시켜 과로사를 방지할 생각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택배노조 총파업 당시 사회적 합의기구 재가동을 약속한 만큼 빠르게 실행해야 하며, 국토부는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하는 단체들과 함께 실효성 있는 사회적 합의 이행 점검을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방지할 수 있다.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중환자실에 있는 남편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던 산재노동자 유족의 말씀이 떠나질 않는다. 택배노조는 이 땅에 모든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투쟁할 것이다. 동지들의 연대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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