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재수 끝에 운전면허를 따낸 어떤 청춘은 당장 차를 끌고 여기저기 달려 볼 생각에 설렌다. 늦은 밤, 탁 트인 자유로를 달리며 평소 꼼꼼하게 선곡해 둔 드라이브 음악을 튼다. 창을 내리고 선선한 바람을 맞는다.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어느 주말이면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들었던 한적한 동네를 찾아가 유유자적 거닌다. 동해안으로 달려 볼까. 저 아래 남쪽 마을은 또 어떨지. 대형마트 장 보는 것도 이제 문제없다. 그러나 초보 운전자는 오늘 도심 복잡한 도로에 나가 거친 야생 속 초식동물의 삶을 겪고야 만다. 온통 바쁜 사람들뿐인 그 도로에 자비란 없으니, 홀로서기 생존이 쉽지 않다. 빵빵 소리에 화들짝 놀라 가슴 뛰는데, 좌회전 신호는 들어오지 않는다. 건너편 직진 차량은 끊이질 않는다. 머릿속이 하얗다. 동공엔 지진이 온다. 어느새 적신호다. 비보호 좌회전은 도로의 효율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는데, 능숙한 운전자라도 매번 쉽지 않다. 사고가 날 경우엔 높은 과실 비율을 떠안게 된다. 보호받지 못하는 나의 갈 길을 어찌하나. 비보호 좌회전 표시는 영 반갑지 않다. 마침 표지와 겹쳐 보인 저기 노동자 신세가 또 어떤가. 사람이 들어가 점검하는 중에도 제철소의 기계는, 발전소의 컨베이어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안전을 지켜봐 줄 동료가 곁에 없었다. 효율 때문이다. 돈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벨트에 말려들어 사람이 죽어 나간다. 끼이거나 떨어져 크게 다친다. 온갖 적신호에도 질주는 쉬이 멈추지 않아 산재공화국 오명이 여태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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