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규 변호사(법률사무소 시대)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고 김용균의 원·하청 임·직원들에 대한 형사 2심 첫 공판이 지난 7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앞서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1심 판결에서 김용균 사망 사고의 경위와 원인이 된 사실관계를 대체로 인정했다. 하지만 원청인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 등 임·직원과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임·직원들에게 각각 업무상 과실치사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 등 공소사실의 전부 또는 일부는 무죄로 판단하면서 6개월~1년6개월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 등 솜방망이 처벌했다. 양벌규정에 따라 서부발전에는 1천만원, 발전기술에는 1천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1심 판결의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1심 법원은 2004년 하청노동자의 벨트 협착 사고시 단독작업이 문제가 돼 ‘2인1조 작업 의무화’가 보고된 사실, 2018년 3월 김병숙의 대표이사 취임 전후로 태안발전본부에서 동종의 사망사고 등이 발생했던 사실, 김병숙이 취임 후 자신을 안전보건 최고책임자로 지정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김병숙이 벨트 협착 사고 우려 및 2인1조 의무화 위반 등에 관한 구체적·직접적 주의의무가 아닌 일반적·추상적 주의의무만을 지므로 업무상 과실치사죄의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2인1조 근무 원칙 준수가 가능하도록 투입 인력과 노무비를 승인할 최종 권한이 있는 대표이사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의 책임은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최고책임자가 가진 권한에 비례해 주의의무 위반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상식과 동떨어진 판단이다.

그리고 1심 법원은 원청 사업주 책임에 대한 소극적 해석으로 서부발전 임원들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 위반치사죄에 대해서도 모두 무죄 판결을 했다. 서부발전이 문제의 설비에 대한 운영 전반을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하고, 기능적·유기적으로 연결된 작업공정 전체를 관장하면서 하청노동자 투입 인원·시기·근태 및 설비 운전방법 등에 관해 직접 관여하고, 작업 지시를 통해 발전기술의 설비운전 관련 업무를 직접적·구체적으로 관리·감독한 점 등을 모두 인정했다. 그럼에도 서부발전과 하청노동자들 사이에 실질적 고용관계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므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이러한 소극적 해석이야말로 ‘위험의 외주화’ 또는 ‘외주화로 인한 위험’을 야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1심 법원은 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에서 사고 전 6년간 매년 평균 9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중 96% 이상이 하청 업체 소속이라는 사실, 과거 컨베이어벨트 등에서 비슷한 사고가 수차례 반복 발생한 사실, 이 사건에서 위반한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함에도 오히려 피고인들이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고 피해자를 탓한 점 등을 지적했다. 다수의 형량 가중 요소가 존재하고 감경요소는 거의 없음에도 1심 판결의 형량은 대법원의 적정 양형기준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그마저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연 매출 50조원이 넘는 서부발전에 선고한 벌금 1천만원은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수준이다.

법원의 낮은 선고형은 산재사고에 있어서만큼은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를 발생하게 한 것이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한 것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 탓이다. 그러나 동종의 중대 산재사고가 반복해 발생함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과오를 과실에 의한 행위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망을 야기한 잘못에 대해 최소한 미필적 고의범으로 취급해 엄벌함으로써 비로소 산재사고를 일반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산재 사망률과 대비되는 산업안전범죄에 대한 낮은 처벌 수준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영국의 산업안전범죄 엄벌주의에 따른 낮은 산재율은 익히 알려져 있다. 김용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김용균법,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산재 예방의 책임과 권한이 있는 원청과 기업 대표자, 중간도급인들 모두가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법률 개악이 없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엄벌주의만을 고수하는 것은 처벌 회피를 위한 경영책임자의 등기 대표이사 사임, 최고 안전책임자(CSO) 꼼수 선임 및 산재은폐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사전예방책으로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위험을 판단하고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강력하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위험성 평가시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참여를 보장하는 데 그치고 있다. 노동조합이나 노동자가 평가한 위험 요소를 해소하기 위한 요구와 의견이 관철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도 단체협약에 명문 규정을 두지 않는 한 노동자가 행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하청노동자는 더더욱 그렇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노동자 의견 수렴이나 작업중지권을 강화하는 기업 사례가 있다고는 하나 소수에 그치고 있고, 형사책임을 면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수단에 그칠 우려도 있다.

1년에 2천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하는 나라의 기업은 오로지 이윤을 위해 위험한 일터를 방치하고 있다.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기업에 가장 큰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그리해 기업이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는 일이 있을까 봐 전전긍긍하도록 만들자.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 방치는 기업에 의한 살인행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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