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현우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장
▲ 나현우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장

2023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의 본격적인 심의가 시작됐다. 지난달 2차 전원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한 ‘업종별 차등적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경영계는 생산재 물가 상승을, 노동계는 생활물가 상승을 이유로 각각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과 대폭 인상, 업종별 차등적용 찬성과 반대를 주고받았다.

헌법 32조는 국가의 국민 고용증진과 적정임금 보장 노력 의무를 언급하며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도록 정하고 있고, 최저임금법 1조는 노동자에게 ‘임금의 최저수준 보장,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제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서 임금을 받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는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비용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헐값에라도 팔지 않으면 생활을 영위할 수 없기에 사용자의 임금 후려치기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노동을 해도 인간적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빈곤 상태에 놓인다. 인간의 노동력 가격을 시장에 맡기면 노동자는 빈곤으로 인한 삶의 파탄으로, 사용자는 노동력의 질 저하로 인한 생산력 감소로 피해를 보고 사회의 지속가능성 자체도 위협받게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가와 우리 정치공동체는 인간의 노동력을 일정 가격 이상으로 팔도록 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정해 노동자에게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사용자에게는 일정한 질 이상의 노동력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축구로 치면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골키퍼’로 이 사회에서 노동자가 시민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동력의 최저 가격을 지키는 제도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둘러싼 최근의 사회적 논의를 보면 최저임금의 본질이 노동자가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임금 수준인지 아닌지,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인상이 필요한지보다는 자영업자와 노동자 중에 누가 더 힘든지 ‘불행 배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보인다. 그보다는 최저임금이 현재의 급격한 물가 상승을 고려할 때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하락시킬 여지를 제거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인상이 필요한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실질적으로 고용이 감소할 여지는 얼마나 되는지 등 객관적이고 건조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업종별 차등적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산업별 최저임금 적용이 필요하다면 최저수준의 임금을 기본값으로 해 그 토대 위에서 산업별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 개편이나 산별 최저임금 수립을 위한 산업별 교섭체계에 대한 로드맵이 필요하나 윤석열 정부도, 경영계도 그런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업종별 차등적용 주장은 노동력의 최저 가격 안전장치를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인상률에서 양보를 얻어 내기 위해 매년 반복하고 있는 ‘블러핑(일종의 공갈)’이거나.

한편 최저임금 인상률이나 차등 적용과 별개로 노동력의 최저가격으로서 ‘최저임금’제도의 사각지대는 점점 커지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 월환산액에 포함되는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2016년 137만명에서 지난해 185만1천명으로 5년간 35% 폭증했다. 여기에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독립노동자인 프리랜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가 포함된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424만1천명에 육박한다.(4월 고용동향) 최근 최저임금위 의뢰로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 평균시급은 7천289원으로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9천160원)에 한참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 수준, 차등적용 여부를 넘어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근로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적정소득(최저임금)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의 문제가 중요해진 이유다.

더 값싸게 노동력을 쓰기 위한 방식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초단시간 노동의 활용, 플랫폼을 이용한 아웃소싱, 크라우드워크를 통한 비고용 노동력 구매 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산업변화’를 넘어 더 값싼 ‘인간’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노동운동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이 온전히 임금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로 기능하도록 지키는 것과 함께 자꾸만 넓어지는 ‘최저임금’ 바깥 노동자의 적정소득(최저임금) 보장을 위한 보호망을 만들어 내는 것을 도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바깥은 또다시 최저임금을 보장받는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로 양분되고,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늘어날수록 최저임금 제도의 실효성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최저임금이 일하는 사람의 노동력 최저가격을 보호함으로써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라면, 최저임금위는 현재의 소비자물가 폭등 상황에서 실질임금 하락을 막기 위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을 핵심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 이상의 인상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영향, 노동시장 내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분배 등을 고려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점점 늘어나고 있는 최저임금 바깥 노동자 적정소득 보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최저임금위는 최저임금 인상액, 차등적용 여부 외에도 ‘최저임금제도의 발전을 위한 연구 및 건의’를 할 수 있다. 강제력이 없어도 노·사·공익이 함께 최저임금 제도 바깥의 노동자를 위한 최저임금 보장 방안 마련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는 것도 사회적 논의의 유의미한 시작이 될 수 있다. 부디 올해 최저임금위 논의가 인상금액을 두고 벌어지는 ‘불행 배틀’, 관성화된 ‘블러핑’과 집단 퇴장을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장 (yunion10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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