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법률원)

아직 코로나19의 종식을 말하기는 이르지만, 팬데믹이 점차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부가 발표한 각종 지침과 보도자료 등을 갈무리해 보면서, 재난을 통제하기 위해서 국가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되짚어 본다. 그중 하나가 시기별로 강력한 사전예방적 조치들을 취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의심증상 발생시 집에서 며칠간 쉬면서 외부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고, 심지어 증상이 없더라도 밀접접촉자는 스스로 격리할 의무가 부여되기도 했다. 확진자가 다녀간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추가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예방적으로 시설 이용 제한 또는 폐쇄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확진자수·사망자수·백신접종률·병상수 등 여러 사정들을 고려해 발병이 확인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발병 위험에 대한 우려만으로 강력한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 동안 백신이 개발돼 접종이 이뤄졌으며 각종 시설 및 개인 방역조치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감염병 예방 및 확산 방지라는 목적을 위해 시민의 자유를 다방면으로 제한한(아직도 일부 선별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각 수단이 얼마나 적절한지 지속적인 토론과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정부가 전 사회적으로 이만큼의 사전예방적 조치를 강도 높게 시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함께 경험했다. 그렇다면 이를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적용할 수는 없을까.

“중대재해 발생 우려가 있거나 노동자에게 유해·위험이 초래될 우려가 있는 경우, 필요한 조치를 통해 해당 우려가 제거될 때까지 출근 또는 작업을 중단할 것. 사업주는 위 조건에 해당하는 노동자에 대해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하고, 위와 같은 내용을 사전에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관리할 것.”

코로나19 관련 정부 지침 중 일부를 중대재해에 적용하면 위와 같이 바뀐다. 그리고 산업별·업종별·지역별 중대재해 사례가 날마다 취합·공표되고, 즉각적인 재해조사를 통해 밝혀진 중대재해 원인이 고용노동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나와 내 가족의 일터, 지역 공동체에서 발생한 재해의 내역과 원인을 찾아보며 함께 걱정하고 곳곳에서 토론하며 필요한 조치를 요구한다. 정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뿐만 아니라 발생 우려가 있는 사업장 내지 시설에 대해서는 가동을 중지시킨다. 과거 재해 사례 취합, 노동자 의견 수렴, 동종 업계 사례 파악 등을 통해 사전예방적으로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도록 하고 해당 조치들이 이행될 때까지 작업이 중지된다. 처음에는 사전예방적으로 이뤄진 작업중지 기간 동안의 경제적 손실이 크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렇게 확보된 시간 동안 산업별·업종별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작업중지가 필요 없는 안전한 일터가 기업의 대표적인 경쟁력이 된다.

꿈 같은 이야기인가? 불과 최근까지 우리가 2년 넘게 경험했던 코로나19 관련 조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방의 대상이 감염병에서 중대재해로 바뀌었을 뿐이다. 심지어 우리 법에는 위와 같은 조치의 근거가 대부분 갖춰져 있다. 특히 작업중지에 관한 입법은 빼곡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의 작업중지의무(51조·54조), 근로자의 작업중지권(52조), 고용노동부 장관의 작업중지 명령(53조·55조)의 각 근거를 모두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상 노동부 장관은 사업주가 사업장의 건설물 또는 그 부속건설물 및 기계·기구·설비·원재료에 대해 필요한 안전·보건상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에게 현저한 유해·위험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해당 기계·설비 등에 대해 사용중지·대체·제거 또는 시설의 개선 등을 명할 수 있다. 과거에는 감독상의 조치로서 근로감독관이 필요한 검사 등을 하고 그 결과 필요한 경우 비로소 사용중지, 시설의 개선, 작업중지 명령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감독상의 조치가 전제되지 않는 경우 유해·위험한 상태인데도 독자적으로 시정조치를 명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이에 2019년 감독 여부와 관계없이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에게 현저한 유해·위험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바로 사용중지 등 조치를 명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또한 사업주가 이와 같은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 근거도 존재한다. 정부가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예방적 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이미 탄탄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나서야 작업중지를 언급한다. 그조차도 중대재해가 발생한 작업과 동일한 작업에 한정된다며, 무엇이 동일한 작업인지를 두고 씨름한다. 날마다 일터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사회인데, 노동자를 살리기 위해 작업중지 등 사전예방적 조치를 했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단순 노무제공 거부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는 나라에서, 노동자는 목숨을 거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기 위해 형사처벌 위험을 감수하며 스스로 작업중지를 해야 한다.

볼 때마다 놀라운 사실은, 의외로 생각보다 법은 나아가 있다. 우리의 과제는 그것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이들의 인식과 의지, 실력의 문제다. 코로나19에 맞서던 그때처럼 중대재해를 날마다 겪고 있는 지금도, 우리에게는 강력한 사전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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