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물가 폭등으로 세계 각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두 자릿수에 육박했다. 40년 만에 최고치다. 한국도 5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식품은 7.1%, 석유류는 34.8%,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9.6% 상승했다. 생필품 소비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 계층일수록 체감물가가 높다.

이번 물가 상승의 특징은 공급·수요·통화 등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가 한꺼번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방역이 완화돼 소비는 증가하는데, 국제적 공급사슬 혼란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더해져 물품의 생산과 이동에 큰 제약이 생겼다. 2년간 이어진 선진국의 양적 완화와 재정적자도 물가 상승에 악영향을 미쳤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잠겨 있던 정부가 푼 막대한 돈이 최근 금리 상승과 자산 거품 위험으로 시중으로 빠져나오고 있다. 그 결과 통화 가치가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물가 폭등 책임을 물어 바이든 정부를 몰아세우고 있다. 지난해 1조9천억달러(한화 약 2천100조원)라는 천문학적 재정이 투입된 ‘미국구제계획’(American Rescue Plan)이 쟁점이다. 최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플레이션 예측이 틀린 것 같다고 말해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공화당은 미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물가상승률이 더 높은 이유가 바이든 정부의 정책 탓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경제자문이었던 래리 서머스도 경기 부양이 필요했던 건 사실이지만 바이든의 계획은 그 규모가 과도했다고 지난해부터 비판했다.

물론 바이든 정부에 대한 옹호도 만만치 않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물가 상승에 관한 호들갑이 더 문제라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2~3% 물가 상승만 정상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어느 순간 굳어진 시장의 이상한 믿음일 뿐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을 하면 고통이 어마어마하다. 고물가 비용을 감당하면서 사회간접자본 투자, 빈민 구제 등으로 사회적 효용을 얻는 게 낫다. 진보단체들은 물가 논란으로 미국구제계획의 실질적 성과가 묻혀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일시적으로 확장한 아동 지원금 정책이 대표적이다. 2천300만 부모가 혜택을 봤고, 수백만 빈민 아동이 실질적으로 상황이 좋아졌다. 클린턴 정부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은 아동 지원으로 얻는 인구의 생산성 향상이 단기적인 물가 상승을 상쇄할 것이라며, 정부와 의회의 아동 지원 정책 연장을 촉구했다.

한국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물가 논란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1.75%로 0.25%포인트 인상했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올릴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국내 물가만이 아니라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영향을 받는다. 미국보다 금리가 너무 낮으면 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입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 자칫 자산시장이 크게 요동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대폭 올릴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하지만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엄청난 규모의 가계부채가 문제가 된다. 지난해 한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어섰다. 선진국 대부분은 40~70%에 불과하다. 기준금리가 인상하면 시간을 두고 시중금리도 상승한다. 장기간 이자를 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 채무자나, 단기자금을 반복해서 빌려야 하는 자영업자들은 이자 비용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이 물가를 확실하게 잡는 것은 아니다. 물가 상승의 공급측 요인이 워낙 큰 데다, 통화 측면에서 봐도 한국에서는 미국과 달리 충격적인 통화·재정 정책이 없었다. 그래서 금리 상승이 물가는 못 잡고 서민만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물가 상승 고통보다 가계부채 부실화 고통이 더 클 수 있다.

한편 언론에서는 임금발 물가 상승 우려가 나온다. 물가 상승이 임금인상을 부르고, 임금인상이 다시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올해 1분기 임금 데이터에서 대기업(300명 이상 사업체)의 월 임금인상률이 13.2%로 나타난 것이 근거다.

하지만 자료를 자세히 보면 이는 기우다. 우선 임금이 크게 상승한 산업은 제조업과 금융업이었다. 이들은 수출로 매출을 올리거나, 이자로 수입을 얻는다. 임금이 상품 가격에 전가돼 국내의 물가 인상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매우 적다. 다음으로 노동자의 80%를 차지하는 300명 미만 사업체의 임금인상률은 4.9%에 그쳤다. 노동자의 60%를 차지하는 30인 미만 사업체는 이보다 더 적은 4.3%다. 임금발 물가 상승은커녕 실질임금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기업의 경우도 노동자 임금인상보단 기업들의 엄청난 이윤 증가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상장기업의 손익계산서는 ‘검은색’으로 뜨거웠다. 매출 증가율은 19%, 영업이익 증가율은 자그마치 58%에 달했다. 삼성전자를 빼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자금운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노동자 임금인상분보다 훨씬 크다.

요컨대 미국이든 한국이든, 물가 상승 대책을 두고 딜레마가 있다. 물가 상승을 내버려 두는 것은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막자니 그 피해가 크다. 특히 피해가 취약계층에 더 집중된다는 게 문제다. 물가를 잡으면서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정책을 두고 한동안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노동조합은 하후상박 연대임금, 적절한 최저임금, 정부의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확대 등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총연맹이나 산별노조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별 임금교섭 체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기득권 유지와 임금 극대화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이전처럼 임금교섭에 나서면 노동시장의 이중성과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총연맹과 산별노조는 불평등 타파, 공공성 강화, 공정한 산업전환 같은 거대한 슬로건에 집착하기보단 물가 급등 시대의 피해에 대해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쟁취하는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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