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3차 전원회의가 9일 예정돼 있다. 그날 회의에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가 대선에서 업종·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하면서 어느해보다 쟁점이 되고 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주장은 과연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김용남 여성노조 정책국장
▲ 김용남 여성노조 정책국장

1만원, 1만5천원, 2만원…. 지난달 노조에서 진행했던 최저임금 인상 거리캠페인에서 많은 시민들이 적어 주신 최저임금 희망 금액이다. 시민들의 눈높이는 문재인 정부가 결국 지키지 못한 ‘1만원’보다 위를 향해 있다.

매년 불거지고 있는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란은 최저임금법 4조에 있는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는 문구에서 기인한다. 이는 1988년 이후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사문화된 조항이다. TF팀까지 꾸려 차등적용 가능성을 타진했던 2017년에도 노·사 공히 불가능함을 확인한 바 있다. 해마다 소모적인 갈등만 유발하고 있는 차등적용. 올해는 윤석열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더 힘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이나 근거 제시 없이, 최저임금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기업의 지불능력만을 운운하며 구호로만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의 자율적 임금 결정 시스템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사각지대 노동자, 협상력이 없는 취약노동자에 대해 국가가 개입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할 것을 법률로 강제하는 제도다. 여성노조가 2000년 청소용역 여성노동자가 중심이 돼 최저임금 현실화 문제를 최초로 제기할 때만 해도 최저임금은 그저 상징적인 금액으로만 여겨지고 있었다. 실제 그 금액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잘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영세사업장의 임금, 용역단가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기본급을 설계하고 있다. 기업이 충분한 지급능력이 있는데도 노동자에게 저임금을 합법적으로 강요하는 모순된 구조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전경련·경총을 비롯한 재계가 진정 중소·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차등적용을 원하는 것인지, 이를 빌미로 최저임금 인상을 억제해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세계적으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실시하고 있는 몇 개 안 되는 나라들도 최저임금 이상을 주기 위한 것이지, 그 이하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하고 있지는 않다. 최저임금 이상을 주고 싶은 것이라면 사용자가 알아서 주면 된다. 더 많이 주는 걸 뭐라 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용자들의 차등적용 주장은 현재 최저임금보다 덜 주고 싶은 것이 핵심이다. 이 자체가 임금의 최저선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최저임금제의 취지와 모순되는 것이다.

2016년 사용자들은 21개 업종 중 7개 업종(도소매업·운수업·숙박음식점업·부동산임대업·사업지원서비스업·예술스포츠여가서비스업·기타 개인서비스업)에 대해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 지급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해당 업종은 중소·영세 사업자와 저임금 노동자가 집중돼 있기도 하지만 각종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비롯해 백화점·대형마트·콘도·호텔·대형음식점·유흥주점·인력공급·항공운수업 등 대형 사업자가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며 줄줄이 포진하고 있기도 하다. 2021년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 및 최저임금 수준 국제비교’ 자료에 따르면, 전체 임금노동자 중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 비율이 15.3%에 달한다. 농림어업(54.8%)·숙박음식업(40.2%)·도소매(19.0%) 등 일부 업종의 미만율이 유독 높다. 숙박음식업·도소매업은 여성 집중도가 매우 높은 대표적 업종이며 농림어업도 여성노동자의 비율이 40% 가까이 된다. 지불능력이 낮다는 이유로 해당 업종을 중심으로 최저임금을 차등지급한다면 원래도 저임금이었던 취약노동자의 임금을 더욱 낮추게 되는 이중차별을 가져올 것이다. 이는 결국 소득불평등 악화와 성별 임금격차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업종 구분으로는 지불능력을 가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지불능력이 최저임금의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최저임금제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번지수를 잘못 찾은 주장일 뿐이다.

최저임금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 차등적용 주장의 근거가 되는 최저임금법 4조1·2항을 수정·삭제해야 한다. 최저임금제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저임금 노동자와 중소·영세 자영업자 모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고민하는 것이 모두가 상생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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