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정책 진단 토론회’가 열렸다. <신훈 기자>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노사 협력을 통한 상생의 노동시장’을 구축하는 방안으로 노사협의회 활성화와 노사의 자율적인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노사협의회를 통해 단체교섭권 무력화를 시도하고 자율이라는 미명하에 장시간 노동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노동계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지식인선언네트워크는 지난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진단하고 대응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노사협의회만 강조하는 새 정부,
정작 단체교섭권 보장 방안은 전무

윤석열 정부는 노사협의회 기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3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대표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제도개선이란 “근로자위원은 근로자 과반수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선출한다”는 내용의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사협의회 기능 강화의 명분은 노조가 대표하지 못하는 미조직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겠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하도록 법에 명시한다고 해서 현장에서 노사협의회가 실질적인 노동자 이해대변기구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노조 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노사협의회 강화를 주장하는 것이라면 노동 3권 강화를 위한 대책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정부 국정과제에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원·하청 공동노사협의회 활성화를 제시할 뿐이다. 이에 대해 이창근 연구위원은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이나 현대제철 사례에서 최소한 원청에 부분적이거나 공동의 단체교섭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며 “이런 흐름을 반영해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방안을 제도화하기보다 공동노사협의회 설치를 독려하는 것은 단체교섭권 확대보다 노사협의회 강화를 통해 집단적 노사관계를 관리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노사협의회가 노조의 힘을 빼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은 “사업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집단적 논의과정에서 노조를 배제하고 노사협의회를 중심으로 노사관계에 정책적으로 개입한다면 노조 지위를 훼손하기 위해 노사협의회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실상은 사용자 요구 반영된 것”

노동시간 유연화는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정책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노사의 자율적인 근로시간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를 명시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동시간에 대한 규율이 획일적·경직적이며, 이로 인해 성과 중심의 근무방식이 확산하는 디지털 전환 시대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계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가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제도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1주간 총 근로시간이 64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규율하고 있다. 하지만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시간 상한을 규제하는 조항이 없다. 다만 1개월을 초과하는 정산기간을 정한 경우 근무일 사이에 연속해서 11시간 이상 휴식시간을 부여하도록 규정할 뿐이다.

이는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활용되는 제도인 반면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현장의 실상은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이창근 연구위원은 “사용자의 과도한 업무 지시와 경쟁 조장으로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며 “노동시간 상한 규정이 없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제도로 오남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노동시간 유연화가 노동자의 선택권을 확대·강화하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상은 사용자의 요구를 수용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 3월 한국경총이 30명 이상 기업 20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경제 상황과 차기 정부에 대한 전망’ 조사에서 응답 기업 59.4%는 차기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노동개혁 과제로 ‘근로시간제도 유연화’를 꼽았다. 박주영 부원장은 “정부가 말하는 노동시간 유연화는 노동자의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게 아니라 기업의 필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늘렸다 줄이면서도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사협의회 시대’ 노조의 생존 전략은
미조직 노동자 이해 대변과 내부 격차 해소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사협의회 활성화를 위시한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대응방향도 논의됐다. 이창근 연구위원은 “미조직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노동계 내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노조가 제시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노사협의회가 집단적 노사관계의 주요 행위자로 떠오르고 노조는 주변부로 밀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조직 노동자와 내부 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추는 연대주의적 노동운동이 집단적 노사관계의 주요 행위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민주노조의 ‘생존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노동계가 노동 ‘갈라치기’와 분열·배제를 도모하는 정책에 맞서 통합과 연대·포용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귀천 이화여대 교수(법학)는 “윤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정치인들은 지난 대선에서 강성 노조의 권리를 축소하고 힘을 빼야 청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취약노동자 권리 강화에 관한 정책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며 “노동계는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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