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파리바게뜨 본사가 있는 서울 양재동에서는 노조 지회장인 임종린씨가 53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임종린 지회장이 자신의 몸을 내던져 말하는 바는 너무나 소박하다. “점심시간 1시간을 보장하라. 아프면 쉬게 해 달라. 가족이 상을 당하면 장례에 참석하게 해 달라. 노조활동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당연하다고 여길 만한 요구를 걸고 53일이나 단식을 한다는 것은, 회사가 노동자의 목소리에 아예 귀를 닫고 있다는 뜻일 게다. ‘행복상생’을 이야기하며 농가를 응원한다는 파리바게뜨가, 고객의 소리를 적극 경청한다는 파리바게뜨가, 정작 자신의 빵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이토록 무시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려면 노조를 만들어서 교섭을 하고, 교섭이 잘 안 되면 투쟁을 하면 된다. 헌법과 법률로 이런 권리가 보장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직도 노동조합을 하려면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 소수노조는 아무리 절박한 요구가 있어도 회사와 교섭을 하기가 어렵고 독자적으로 파업을 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회사들은 노조가 생기면 복수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조를 소수노조로 만들어서 힘을 빼려고 한다. 파리바게뜨는 복수노조가 생긴 이후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을 괴롭혀서 노조를 탈퇴하거나 일을 그만두도록 만들었다. 소수노조가 된 민주노총 소속의 지회장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닫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파리바게뜨를 검색하면 “SPC그룹 파리바게뜨, 지역 대표매장 라이브 방송으로 소개하는 ‘빵지순례’ 진행”이라거나, “골든 클로버 이벤트 성황리 종료” 등 파리바게뜨의 광고성 기사들이 압도적이다. 한 사람이 그 회사를 상대로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는데, 언론은 그 회사의 이벤트를 소개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 아무리 기업의 광고로 먹고사는 언론이라지만, 노동문제에 대한 외면이 일상화돼 사안의 경중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단식 40일이 넘어서면서부터 언론이 조금씩 관심을 두기는 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야 기삿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 언론의 인식이 노동자들의 일상적 목소리를 약하게 만든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약하면 기업들은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쉽게 저버린다. 아무리 ‘상생과 협력’을 이야기한들 자신의 빵을 만드는 이를 무시하는 기업이 소비자나 생산자를 존중하겠는가. 그래서 소비자이기도 한 시민들이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곤 했다. 2018년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를 불법파견한 것이 문제가 됐을 때 많은 시민이 제빵기사 권리 보장을 함께 외쳤고, 파리바게뜨는 그 힘에 밀려 ‘사회적 합의’에 나섰다. 자회사를 만들어 제빵기사를 고용하고, 임금을 몇 년에 걸쳐 정규직과 동일하게 하며, 부당노동행위자를 징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합의가 이뤄진 이후 시민들의 관심이 멀어진 틈을 타 파리바게뜨는 사회적 합의를 어기고 부당노동행위를 또다시 자행했다.

임종린 지회장의 단식이 길어지면서 하루가 지날 때마다 안타깝고 불안하다. 그래서 시민들이 다시 나서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불매를 하고, 해피포인트 탈퇴로 항의 의사를 표하기도 한다. 매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한다. 언론도 변화의 기류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커지면 파리바게뜨도 결국은 교섭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디 이런 간절함이 모여 회사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수용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임종린 지회장이 단식을 끝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많은 분들의 동참을 요청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여전히 목소리에 힘을 갖지 못한 많은 노동자는 노조를 만들기 어려워서 불합리한 처우에 침묵할 것이고, 애써 노조를 만들었더라도 회사의 탄압에 의해 소수노조가 되거나 하청이거나 특수고용이라는 이유로 교섭을 못 하게 되면 그 목소리도 다시 갇혀 버릴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또다시 목숨을 건 투쟁을 해야 한다.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만들고 교섭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부당노동행위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하도록 하고,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한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도 폐지해야 하며, 원청인 진짜 사장이 교섭 대상임을 명확하게 하는 사회적 압력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자신의 목숨을 내거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파리바게뜨 임종린 지회장에 대한 응원이 ‘노조할 권리’를 위한 사회적 힘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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