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드라마제작 방송스태프 고용실태와 문제점·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 <정기훈 기자>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은 다단계 하도급구조의 말단에 놓여 있다. 방송사를 정점으로 ‘대형 제작사-소규모 제작사-팀장급 스태프’로 이어진다. 이때 스태프들의 노동환경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고 책임을 져야 할 사용자는 누구일까.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드라마 방영주체인 방송사와,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제작사를 스태프의 공동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제작현장에서 실질적인 지휘·감독 권한을 행사하는 연출감독을 고용한 방송사와, 스케줄이나 스태프들의 임금 관리를 하는 제작사 모두 스태프의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기법 위반 고발당한 KBS 드라마 전부 종영
노동부는 여전히 ‘조사 중’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이날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지부장 김기영)를 포함한 8개 노동·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다고 알려진 주체가 여럿인 데다 스태프의 계약 상대방과 현장에서의 지휘·감독권자가 괴리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용자 규명에 어려움이 있다”며 “현장에서 근로기준법 위반을 논할 때 누가 사용자가 돼야 하는지, 한 주체에 대해서만 사용자성을 인정해야 하는지 등이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사용자인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계약의 형식이나 관련 법규의 내용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4년 “근로계약의 일방 당사자로서 해당 근로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아 그에 따른 보수를 지급하게 되는 사용자가 반드시 1인으로 한정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서의 구체적인 인력 운용, 관리 실태, 해당 사업의 수행에 있어 사용자들 간 업무분담 내용과 방식 등에 따라 복수의 사용자가 공동사업주로서 실질적으로 단일한 산업단위를 구성함으로써 특정 근로자들의 노무를 일체로서 수령하고 그에 따른 보수를 공동의 책임하에 부담하게 될 경우도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을 근거로 8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해 9월 KBS와 제작사를 공동사용자로 보고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고발 이후 8개월이 지나도록 사건은 노동부 조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고발 대상이 된 6개 드라마 전부 종영한 상태다.

김기영 지부장은 “위법사항이 확인돼도 시정지시 등 후속조치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도급계약을 강요받고 있고 노동부도 사실상 묵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동부는 2019년 7월 드라마 현장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며 “현장 스태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부 “드라마 끝나도 사법조치 가능”

토론회에 참석한 최충운 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 사무관은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기존 근로감독으로 근로자성을 인정했다고 해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근로자성을 다시 판단해야 하는데 200여명에 대한 근로자성을 따져서 사법적 절차까지 가는 과정에 충분한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 제작이 끝났다고 해서 범죄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는 대로 법적인 권리 구제나 사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근본적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4자 협의체는 태생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며 “방송사, 제작사, 노조와 정부부처,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 등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드라마 현장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위해 2019년부터 논의를 이어 오던 4자 협의체(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지상파 3사·언론노조·방송스태프지부 참여)는 현재는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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