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지난해 5월18일 고용상 성차별 금지 및 성희롱 발생시 사업주 조치의무 위반에 대해 노동위원회 시정제도를 도입하는 개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이 공포됐다. 그동안은 고용상 성차별을 신고해도 감독관마다 차별 문제에 대한 전문적 역량, 성인지 감수성의 격차가 커서 일관성 있는 차별 판단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정권고에 강제성이 없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갈지언정 고용노동부에 차별진정을 제기하는 예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 이달 19일부터는 노동위원회를 통해 차별조사를 진행하고 사업주에게 직접 강제성 있는 시정명령을 할 수 있게 된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장 규모의 제한 없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번 성희롱·성차별 시정제도 도입은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위원회를 이용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해고를 당해도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없었지만, 성차별적인 사유로 해고를 당한 경우라면 성차별적 해고임을 들어 시정신청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도 도입 초기, 과연 성차별 시정신청이 얼마나 제기될까. 차별을 비교·입증하기에는 개별 노동자가 접근할 수 있는 자료와 정보가 제한적이라서, 노동자에게 차별시정 신청은 다른 노동위원회 사건보다 훨씬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2020년 8월부터 이미 시행 중인 학습근로자에 대한 노동위원회 차별시정 제도도 벌써 2년째에 접어들었지만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시정신청도 접수되고 있지 않다. 더욱이 고용상 성차별은 금전적 급부에 대한 차별만이 아니라 모집·채용, 업무배치와 승진, 교육훈련, 정년과 해고, 퇴직 등 인사과정 전반에 걸친 차별을 시정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행위유형에 따른 차별 입증에 상당한 혼란과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편 성차별 시정제도는 성차별 여부 자체를 노동위원회가 판단하지만, 성희롱 시정제도는 표면상 성희롱 피해자 등(신고자와 조사 중인 피해자 포함)에게 사업주가 적절한 조치를 다하지 않을 경우 사업주 조치의무 위반의 시정을 구하는 제도다. 따라서 성차별 시정신청은 원칙적으로 시행일 이후 발생된 성차별행위를 대상으로 하지만(계속적인 임금차별은 제외), 성희롱 시정신청 대상은 사업주의 조치의무 위반행위이므로 시행일 이전에 성희롱이 발생했더라도 시정신청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5월19일 이전 발생한 성희롱행위 피해자에 대해 사업주가 개정법 시행일 이후에도 제대로 된 조치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면 노동위원회에 사업주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시정신청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제도 초기 성차별보다는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사업주 조치의무 위반사건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성희롱이 발생했음에도 사업주가 자체 조사에서 성희롱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다. 사업주의 조사 미개시, 조사 결과의 자의성이 사업주 조치의무 위반의 전제가 되는 상황에서 노동위원회가 성희롱 발생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시정신청 대상에서 제외해 버린다면 신속한 사업주 조치 이행을 강제하려던 제도 취지를 몰각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 제도가 제대로 안착되는 데 노동위원회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이미 2007년 도입된 비정규직 차별시정 제도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알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시정을 통해 비정규직 남용을 규율하고자 했던 사회적 기대를 저버리고, 법 시행 첫해 노동위원회는 차별시정 대상과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과 상상력에 올가미를 씌웠다. 결국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외면받게 된 비정규직 차별시정 제도는 연간 사건수가 두 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여가부 폐지에 찬성한다고 하고 만연히 성차별적 혐오발언을 부끄럼 없이 뱉어 내는 정치인들의 혀 위에서 고용상 성차별·성희롱 시정제도의 성패는 불평등 인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좌표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개별적인 차별행위 하나가 아니라 사업장의 고용평등과 민주적 조직문화 개선을 이끌어 낼지, 여지없이 노동자에게 외면당할지 공은 이제 노동위원회에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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