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가현 노동활동가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지역에는 코티(Kotti)라고 불리는 거리가 있다. 여행객과 이제 막 베를린에 온 사람들에겐, 범죄와 마약 문제가 심각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매달 약 30~50건의 상해, 40~100건의 절도, 40~90건의 마약 관련 범죄가 발생해 60평 규모의 경찰서가 이곳에 세워질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곳의 주민 일부와 활동가들은 “범죄 예방은 경찰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주민이 불안을 느끼는 지점은 교통, 쓰레기, 술에 취한 사람, 부족한 가로등, 인종차별, 성희롱 때문이다” “경찰서가 아니라 사회유대가 필요하다”고 항의했다.

터키에서 온 학교 동기가 베를린에서 제일 맛있다고 한 터키음식점도 이곳에 있다. 이 지역은 이주민, 특히 터키에서 이주해 지금은 독일 시민권자가 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아파트와 터키음식점 옆, 나무가 드리워진 작은 오두막이 한 채 있다. 이 집은 게체콘두(Gecekondu)라고 불린다. 게체콘두는 터키어로 ‘하룻밤 새에 지은 집’ ‘무허가 집’ ‘판자촌’을 의미한다. 1950년대 터키의 산업화는 수도인 이스탄불로 사람들이 몰려들게 했다. 이에 반해 주택 공급은 턱없이 부족했고, 사람들은 공유지 또는 소유권이 없는 토지에 게체콘두라 불리는 판자촌을 형성했다. 터키 정부는 이를 용인했다.

베를린에 있는 게체콘두도 하루 만에 지어졌다. 사회주택에 살던 사람들, 특히 이주민의 사회운동이 바탕이 돼 2011년 코티앤코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들은 2012년 5월25일, 게체콘두를 지었다. 이 집과 공동체를 운영하는 코티앤코에 따르면, 현재 이 집은 ‘완성된 주택은 철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습법에 의해 용인되고 있다. 게체콘두에 사는 이들은 구청장을 비롯한 행정에 관련된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이들은 게체콘두를 지으면서 ‘사회주택의 축소’와 ‘임대료 증가’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코티앤코에 모인 주민들이 사는 사회주택은, 민간 부동산 회사의 주택에 살며 임대료 일부를 정부가 보조하는 형태이다. 임대료는 제곱미터당 일정 금액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임대료가 높아지고, 정부보조가 줄면서, 세입자 부담이 점점 늘어났다. 사회주택의 숫자 자체도 축소했다. 적은 임금과 연금은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저소득 계층의 삶은 더욱 불안정해졌다.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에, 이곳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이 결국 떠나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코티가 ‘힙한 동네’로 부상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생겨났다.

임대료 인하 및 상한선 제한, 사회주택 확대, 대규모 주택 기업의 국유화 이외에도 이들은 주거권을 비롯한 공동선에 대해 말한다. 인종차별, 성소수자 인권 문제, 노동문제를 다룬다. 이 집의 건너편에는 이 운동의 의미를 담은 벽화가 그려진 벽면이 있다. 노동자·이민자·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적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집값이 너무 높다’ ‘임금을 올려라’ ‘동성애 혐오에 맞서는 넌 혼자가 아니야’ ‘인종차별과 배제를 반대한다’ 등의 문구와 함께 시위에 나선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게체콘두라는 이름 자체에도 독일에 이민을 와서 살아 가는 터키 공동체의 존재와 역사에 대한 재확인의 의미가 담겨 있다. 사회주택에 대한 권리문제는 주거권일 뿐만 아니라 ‘어떤 삶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도시 디자인, 정책, 담론의 문제다. 그렇기에 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과 추방에 대한 두려움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문화적·사회적인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올해 독일노총 데게베(DGB)에서 주최한 노동절 집회에는 베를린의 시장이 참석해 발언했다. 사람들은 주거권을 이야기하며 시장에게 야유를 보내고 항의했다. 계란을 던진 사람도 있었다. 데게베의 의장은 “민주주의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도 존중하는 것이고, 우리는 다른 의견도 경청해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다. 세상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태도라 생각한다. 동시에, 지난 주민투표 이후에도 주거권 해결에 미적지근한 베를린시 정부에 화가 나 야유를 하고 계란을 던진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코티의 사례처럼, 노동권과 주거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불안정한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날의 사건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노동운동의 해석과 태도, 주거권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 필요성과 중요성을 느꼈다.

한번은 동기들과 주거권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한번은 경찰서 설립 반대 집회를 보기 위해, 한번은 노동절을 맞이해 좌파그룹에서 개최한 집회에 참석하며, 한번은 맥주를 마시러 갔던 이 공간. 높은 범죄율과 경찰서 설립 문제, 높은 임대료와 낮은 수입으로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 이주민 공동체,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 젠트리피케이션을 살펴보며 갈등과 이견의 한가운데에 코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활동가 (bethemi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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