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졸지에 이렇게 대통령으로부터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이라 불리고 보니 나는, 기분이 한껏 ‘업(up)’됐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1조2항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는 양 순각 착각에 빠졌다.

지난 10일 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 전문을 읽었다. 이렇게 국민 여러분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서 윤 대통령은 “저는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기 위한 시대적 소명을 갖고 오늘 이 자리에 섰다”며 취임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이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한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아니었다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아듣지 못한 나는 취임사 전문을 찾아 다시 읽어야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자신이 대통령으로 취임해서 재건하겠다는 말로 읽혔다. 갑자기 내가 사는 이 나라가 궁금해졌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아니라면 인민민주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와 계획경제 체제라도 된다는 것인지. 내가 세상을 돌아가는 걸 몰라도 한참 몰랐던 게 틀림없다며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생각을 해 봤다. 아무리 헤아리고 살펴봐도 아니었다. 이 나라는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는 어림도 없고 계획경제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이렇게 시작부터 나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의 취임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2. “국내외적인 위기와 난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 가치는 ‘자유’라면서,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고 취임사에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과 “세계 시민 여러분”에게 윤 대통령은 자유의 가치를 강조해서 말하고 있었다.

자유. 내가 틈만 나면 말해 왔던 자유였다. 칼럼을 통해서도 수시로 노동자의 자유를 말해 왔던 나로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해서 말했으니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도대체 대한민국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와 “자유로운 시장”을 언급한 것이니 윤 대통령에게 자유란 정치적 자유와 시장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류는 번영과 풍요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강조하며 대한민국에서, 전 세계에서 이런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서 실현해 나아가자고 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오늘처럼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시장의 자유가 흘러넘친 적이 있었던가.

정당 활동 등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비롯해서 집회 및 시위, 언론 출판의 자유 등 광의의 정치적 자유까지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의 시장은 독점 등 공정규제조차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정도로 시장의 자유가 지나칠 정도이고, 감히 “자유로운 시장” 질서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1970년대 유신독재와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는 분명히 야당 탄압 등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권력에 의해 기업의 생사가 좌우되는 등 “자유로운 시장” 질서가 짓밟혔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을 거쳐 이 나라는 야당 활동 등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권력에 대한 자본의 시장 지배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런데 자유라니. 야당으로서 국민의힘이 탄압을 받았다는 것인가. 그래서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인가. 내가 아는 한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고 할 정도의 자유의 박탈은 없었다. 도대체가 모르겠다. 대통령의 자유에는 역사도 없고 가치도 찾을 수가 없었다.

3. 정녕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를 말하고자 한다면,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국민 여러분을 생각했어야 했다. 위와 같이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오늘 이 나라에서도 여전히 정치적 자유를 박탈당한 자들이 존재한다. 국가보안법과 정당해산제도 등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기본질서 내지 체제를 넘어서는 정치활동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분명히 여기서 정치적 자유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에는 이걸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취임사 첫머리에서 말한 것도, 자유의 적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론에 근거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취임사에서는 “자유로운 시장”을 말하면서 시장경제를 강조했지만, 시장의 자유에 의해서 자유를 침해받는 이들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가 없다. 자유로운 시장, 시장경제란 권력에 의한 시장통제 없이 기업활동이 보장되는 걸 강조해서 말한 것일 수 있겠는데, 결국 자본의 자유로 귀결된다. 이것은 시장경제, 기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한 규제를 가져와 노동의 자유 박탈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마저 위협받게 된다”고 강조했는데, 지극히 올바른 말이다. 윤 대통령의 자유에 대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자유로운 시장과 시장경제를 강조하다 기업의, 자본의 자유에 의해 노동자들의 자유가 침해되는데도 그걸 방치하게 된다면 이 나라 국민 모두의 자유마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 주고 싶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 자유로운 시장, 시장경제에서 자본의 자유에 의해서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자유가 유린되면 국민 모두가 연대해서 자유가 보장되도록 연대해서 도와야 하고,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자유를 유린하는 자본의 자유를 규제해야 한다.

4. 분명히 자유는 옳다. 누구의 말이든 자유는 옳다. 다만 노동자를 대리하면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타령으로 살아가는 나는 기업의, 자본의 자유에 대해 노동의, 노동자의 자유를 강조해서 말하고 싶다. 계약의 자유와 거래의 자유만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시장경제, 시장의 자유 아래서는 기업과 사용자 자본의 자유만 보장된다. 거기서 노동(자)의 자유란 자유의 제한으로 인식될 뿐이다. 자유로운 시장의 질서가 보장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조절되고 회복될 수 있는 걸 노조활동 등 노동(자)의 자유가 방해한다고 취급한다. 윤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었다던 책 <선택의 자유>를 쓴 시카고 경제학파 밀턴 프리드먼처럼 이렇게 노동(자)의 자유를 취급한다면 시장의 자유, 사용자 자본의 자유를 위해서 노동(자)의 자유는 없다. 분명히 자유는 옳은 것인데 노동자에겐 자유가 없다는 옳지 못한 세상인 것이다. 다시 한번 살펴보자.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누구의 자유만 옳은 것인가. 누구만의 자유도 아니고, 누구의 자유만 옳은 것은 아니다. 사용자 자본이 시장을 통해서 노동자를 사용해서 기업활동을 하는 자유를 가지는 것처럼 노동자도 자유를 가져야 한다. 사용자 자본에 대해 노동자도 단결해서 임금 등 노동조건에 관해 교섭하고 행동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자유란 무엇보다도 법적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사용자 자본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노동자가 노조 등으로 단결해서 교섭하고 파업하는 걸 법으로 제한, 금지하는 등으로 규제해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걸 하지 아니하는, 그러한 자유의 보장을 말한다. 이런 자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머리 속에는 없다. 이런 자유는 없다. 그에겐 사용자 자본의 자유를 위해서 박탈해야 하는 노동자의 자유인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유다. 그 무엇으로도 빼앗아서는 안 될 자유라고 나는 강조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자유로운 시장, 시장경제에 의해서 보장되는 사용자 자본의 자유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가진, 이른바 천부인권인 자유라고 할 수도 없다. 태어날 때부터 사용자로서 노동자를 사용한다는 건 생각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자유는 다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일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이니 사용자 자본의 자유와는 수준이 다르다. 이렇게 수준이 다르다고 보면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서는 수준 낮은 사용자 자본의 자유는 제한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반대는 옳지 않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반복해서 부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 노동자도 포함돼 있을 진데, 진정 자유를 말하는 것이라면 노동자의 자유가 사용자 자본에 의해서 유린되지 않고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취임사에서 분명히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고 대통령으로서 의지를 밝혔으니 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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