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전북본부 법률지원센터)

“피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노동조합에서 일을 시작할 때 소위 사수에게 상담업무와 관련해 교육받은 것은 팩트를 설명해 주되, 법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안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법률상담을 하다 보면, 특히 노동관계법률을 노동자에게 하다 보면 불리한 상황들이 대부분인데 내담자의 말을 잘 들어보고 어렵지만 할 방안들을 안내해 줘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업무를 15년 남짓 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려운 점이 많다. 그중 하나가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가 겪어야 할 고단함도 같이 느껴지는 점이다. 물론 내담자의 침해된 권리 회복과 정의 실현이라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도 하지만 앞으로 있을 회사측의 잔인한 태도와 그 태도를 접하는 내담자의 절망이 더 느껴진다. 법적인 분쟁이 잘 안 되고 있거나 설사 잘 되고 있어도 일부 회사의 악의적인 대응에 법적인 분쟁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지리한 분쟁에 내담자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계 상황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럴 때 필자는 물론 상담자로서 성심성의껏 상담을 해 주지만, 요즘은 조심스럽게 저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피하라는 것이 도망가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 상황에 맞는 적절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가 요구하는 대로 처방하지 않고 환자와 상담을 통해 적절한 처방을 하는 것처럼 법률전문가도 내담자와 상담을 통해 적절한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니 법률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률전문가와 상담하고 적절한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노노모 노무사들과 민변 변호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어느 날 누가 우리 사무실 상담 건수를 보더니 일을 설렁설렁한다는 취지로 지적을 한 일이 있었다. 당시 회사에서 상담통계를 활용하는 사업을 하고 있어서 나름 신경 써서 그런지 평소보다 많은 건수가 입력돼 있었음에도 그런 지적을 받으니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적은 수가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을 할까.

상담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고된 업무다. 특히 무슨 무슨 상담소, 콜센터 등 불특정 무작위적 상담은 더욱 고된 업무다. 사무실에 걸려오는 대표 전화는 사무실 신입 차지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된 업무를 한다고 노동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다. 대부분 기업이 상담업무를 외주화하거나, 별도 직군으로 채용해 소위 주요 직군과 분리시킨다. 필자가 근무했던 사업장도 외주화나 별도 직군처럼은 아니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면 업무 강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즉각적인 응대 및 정확한 답변, 친절한 자세(필자는 필자를 비난한 사람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누군가에게 한소리 들은 바 있다)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상담업무에 대한 이중적인 시각을 여기서 알 수 있다.

기업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노동조합은 상담업무에 대한 이중적인 시각을 버리고 주요 업무로 인식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불특정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이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집단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상담자는 시민을 최초로 상대하는 사람이고 이미지를 형성하기에 전문적인 상담 및 상담 체계 구축은 시민들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갖게 한다. 이는 노동조합 인식 개선에 커다란 효과가 있다. 노동조합 상담자는 상담이 조직화로 연결됐는지, 하루 상담 건수와 관계없이 그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은 상담업무를 단순히 조직화 사업의 부수적 업무 또는 악성 민원인 대응용쯤으로 인식해서는 안 되고, 상담업무에 대한 체계를 만들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사업을 배치해야 한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상담업무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역량이 있는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축적된 상담역량을 바탕으로 상담자의 자세·태도 등 상담자를 위한 전문 교육과 주기적인 피드백, 고갈된 체력과 정신을 회복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대부분 수련회·야유회였지만)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무실 전체가 상담업무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고, 이러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자율적인 업무 분위기 속에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 조직으로 이어졌고 이 성과로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선순환 체계가 됐다. 많은 노동조합 상담업무가 이런 선순환 체계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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