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근로기준법 2조1항1호는 ‘근로자’에 대한 정의규정이다.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돼 있다. 최저임금법·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산업안전보건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등도, 각각의 법률에서 언급되는 ‘근로자’를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개별적 근로관계에서 노동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청구하는 과정에서 늘 첫 번째 관문이 된다. 이 칼럼은, 판례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판단 기준으로 ‘인적(人的) 종속성’ 요건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해보려는 글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대법원 판례 법리를 통해 정립돼 있다(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그 중 인적 종속성에 관련된 것으로 풀이되는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여기에서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 등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판례는 법률 규정의 문언에 없는 요건을 느닷없이 창설하고 있다. 법률 규정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만 정하고 있는데, 판례는 이 규정에 전혀 포함돼 있지 않은 “종속적인 관계에서”를 가장 중요한 지표로 제시하면서 그 하위 요소들을 열거한다. ‘근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일컬을 따름이고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종속성은 그 개념요소가 아닌데(근로기준법 2조1항3호)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는 규정에서 “종속적인 관계”가 어떻게 추출되는 것인지, 판례는 일언반구 설명이 없다. 이러한 법리 전개는 그 형식 자체에서부터 타당하지 않다. 이 판례 법리는 법률해석의 기본 원칙인 문언해석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기 이전에, 애초에 ‘해석’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삼권분립 및 사법자제의 원칙에 반한다. 법률규정의 의미를 해석을 통해 구체화하는 것을 뛰어넘어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가 설정해 놓지 않은 요건을 사법부가 새로이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권리 주장을 배척할 때는 그토록 사법자제의 정신에 충실했던 법원이 아니었던가.

노동자로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종속적인 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내용 자체도 문제다. 혹자는 헌법이 10조에서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음에도 32조3항에서 구태여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근로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전제로 해 그 침해가 없게끔 강조하는 취지고, 따라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되기 위해 ‘종속적인 관계’에 처해 있어야 함은 헌법이 전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정하고 있는 헌법 36조1항의 존재를 이유로, 혼인 및 가족생활과 관련된 개인의 권리는 그 개인이 종속적 위치에 놓여 있을 경우에만 행사 가능하다고 할 것인가? 그리고 인적으로, 즉 다른 사람에게 종속돼 있는 사람에게 일부 권리를 부여한다 한들, 그 사람이 헌법 32조3항이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존엄해질 수 있는가?

근로조건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32조3항을, (인간의 존엄성과 양립 불가능한) ‘종속적인 관계’라는 요건을 설정하고 정당화하는 근거로 동원하는 것은 위헌적인 사고다. 32조3항은 현행 헌법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노동 영역에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를 근절하자는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36조1항이 혼인·가족생활에 대해 갖는 의미 역시 같다. 10조와 별도로 32조3항이 존재하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강하게 인정해 줘야 하는 근거가 될 뿐이지, 권리주체인 ‘노동자’의 범위를 좁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근로자의 권리는 ‘종속’에 대한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종속에 대한 대가로서만 근로자의 권리를 ‘허락’하려는 자는 “자본주의 체제는 곧 임금노예제”라는 누군가의 신랄한 일갈 앞에 겸허할지어다.

이른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종사자 등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근로자성의 범위를 확장하거나 근로자성 여부에 대한 증명책임을 사용자에게 전환하는 등의 법률 개정 운동이 논의되고 있다. 실제로 입법발의 역시 이뤄졌다(2021. 9. 6. 강은미 국회의원 대표발의 2112457 법률안). 전적으로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다만 현행법하에서 이들이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행법상 ‘근로자’ 정의규정 자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이에 대한 법원의 그릇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입법운동과 별개의 문제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플랫폼종사자’라고 불리는 자들이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는가? 물론 위 판례 법리에 비춰 보더라도 이들 중 실질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자들이 많을 것이나, ‘종속성’을 요구하지 않는 법률상 정의규정 자체에 의할 경우에는 더더욱 이들은 ‘근로자’로 볼 것이다. 사각지대는 애초에 사각(死角)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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