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지난 10일 출범했다. 출범 전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노동 가치 존중’을 내걸고 노동정책을 제시했지만, 실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책인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선이 크다. 노·사·정, 시민단체가 바라는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을 들었다.

신자유주의적 처방으론 위기 극복 못해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지향점은 기업과 민간주도의 자유시장 경제활성화다. 코로나19,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과 고용위기 대응, 불평등-양극화 해소 등 국가 주도의 위기 대응이 필요한 시점에 신자유주의적 처방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노동 분야에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약속하고 있지만 구체적 정책은 우려스러운 내용이 다수다.

첫째, 노사선택권 확대를 강조하며 제시한 선택근로 정산기간 확대, 연장근로시간 총량관리, 스타트업 및 전문직의 노동시간 규제완화 등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무력화와 건강권 침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노사선택과 자기결정이라는 미명하에 약정한 시간을 넘는 연장노동의 책임과 비용이 노동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노동시간 유연화 이전에 실노동시간단축이 선행돼야 한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특례업종, 재량근로제, 포괄임금제 등 현행 노동시간 규제 회피제도의 남용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둘째, 새 정부는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노조활동 및 쟁의행위 관련 처벌조항은 22개인 반면, 사용자 처벌규정은 6개로 법률자체가 불공정하다. 이런 현실에서 법과 원칙을 강조한 것은 노조에 대한 엄중한 법집행을 의미한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자 한다면 정부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존중과 노조할 권리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셋째, 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관계법령 개정 등을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명확한 경우가 아니면 경영책임자에게 면책을 주겠다는 것이다. 시행된 지 반 년도 안 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손댈 것이 아니라 엄중한 법집행이 우선이다. 아직도 실질적인 법의 사각지대인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안전대책부터 서둘러야 한다.

마지막으로 윤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양극화 해소 및 비정규직 고용안정 대책 등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대책이 빠져 있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반드시 안고 가야 할 문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임금격차, 불안정 고용의 원인과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하는 윤 정부의 진정 어린 고민과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노사관계 법·제도를 ‘글로벌 수준’에 맞게
황용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황용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황용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장기화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고물가, 고금리, 역대 최대 규모의 가계부채 등 복합적인 대내외 악재로 인해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시계 제로의 형국이다. 더불어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는 세계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후진적 노사관계는 국가경쟁력의 걸림돌이자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개선해야 한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 디지털화 등 메가트랜드 변화를 겪고 있다. 새 정부는 이에 맞춰 노사관계법과 제도를 선진화해야 한다. 먼저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의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같은 유연근무제는 활용 기간이 최대 각 6개월, 1개월로 짧아 어려움이 있으므로 기간을 1년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다양한 업무 수행방식이 요구되는 연구·개발직은 근로시간 규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역량을 펼치도록 해야 한다. 연장근로도 업무가 폭주할 경우 신속 대응할 수 있도록 현재 1주 12시간 제한에서 연·월 단위 제한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노사관계 힘의 균형을 위한 보완입법이 시급하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해고자·실업자의 기업별 노조가입 허용 등 노조의 단결권은 크게 강화됐지만 기업의 방어수단은 마련돼지 못해 우려가 더욱 커졌다. 노사 간 힘의 균형 회복 차원에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제도 개선 등의 보완입법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노조의 불법파업 등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는 매우 적절한 상황인식이라고 본다. 그간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로 인해 산업현장의 노사관계 불안을 더욱 키운 측면이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노동정책이 추진돼 경제위기를 신속히 극복하고, 한 단계 성숙한 노사관계의 토대를 마련해 줄 것을 기대한다.

 

차별 없는 노동권, 비정규직 없는 일자리 만들어야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뒤 현장에선 우려와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대선 기간 대통령이 쏟아낸 반노동 발언과 국정과제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이대로라면 시대의 과제인 불평등·양극화 해소는 요원하다. 재벌·자본의 곳간만 불리는 노동자·서민의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새 정부는 이제라도 당사자인 노동자와 민중의 목소리에 귀와 눈을 열어야 한다.

차별 없는 노동권 보장에 나서라. 노동권 사각지대에 머물러 온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 5명 미만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확산하는 불안정노동-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권리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플랫폼산업 확대로 기존의 기준으로는 사용자-노동자성을 명확하게 하기 어려운 노동영역이 확대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 보편적 노동권을 보장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산재보험·고용보험 적용, 불평등 계약관행의 근절 등 여러 가지 과제가 있지만 플랫폼 노동에 대한 통제권과 이를 통한 이윤수취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게 핵심 과제다.

비정규직 없는 좋은 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재벌과 IT·플랫폼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매출과 이익을 누렸지만 고용확대 실적은 미미하다.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동안 지속한 비정규직 정책은 고용유연성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저임금정책과 차별의 고착화로 귀결됐다. 비정규직 유지와 확대재생산의 법적 근거인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폐지와 비정규직 사용 사유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필요하다.

부동산 문제는 자산불평등 심화를 가져오고 부채와 자산 거품을 키워 부채위기로 귀결되는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다. 부동산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주거 공공성 강화가 시급하다. 공공의료기관 확대, 특권화된 의사수 증원, 간호인력 확충으로 적정 노동강도를 보장하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보육·요양·장애인 돌봄을 사회화하고 국가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서열화를 폐지해야 한다. 버스 완전공영제를 통한 대중교통의 편리성 제고와 발전이 필요하다. 아울러 에너지산업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통신·금융 등 현대 사회의 핵심산업 영역 국유화를 통해 보편적인 사회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

 

말뿐인 노동가치 존중, 제대로 하라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를 통해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면서도 사용자 중심의 노동정책 기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실제로 국정과제의 큰 골격은 규제완화, 유연화, 효율과 성과 중심의 정책으로 구성돼 노동존중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특히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와 문재인 정부에서도 줄곧 논란이 일었던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완화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택배·배달 노동자의 잇따른 과로사 문제가 제기된 지 오래다. 일상화된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 건강권 침해와 삶의 질 악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오히려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현행 제도를 무력화할 정책들을 내놓고도 노동존중을 내건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윤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다 보니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법이 전무한 수준이다.

2021년 1월 더 이상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어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5명 미만 사업장 제외,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인과관계 추정 도입 제외 등 ‘반쪽짜리 법’으로 제정됐다. 이에 직업성 질병 범위를 과도하게 축소하고, 2인1조 작업 등 핵심 안전조치 누락, 안전보건 관리 외주화 등 입법 취지를 후퇴시키는 시행령이 더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윤 정부는 보완은커녕 산재예방을 기업 자율에 맡기겠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중대재해처벌법을 그저 ‘기업 방해 요소’로 치부하거나,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비용으로만 간주하는 등 노동을 경제성장의 도구로 치부하는 친기업적 노동관을 여과 없이 드러내 왔다. 이는 국정과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윤 정부에서 노동정책 전반의 후퇴를 우려하는 이유다. 진정으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 사회의 불안한 고용과 소득, 증가하는 취약 노동자, 불완전한 사회안전망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재해 근절, 비정규 노동자 고용안정과 노동기본권 보장, 5명 미만 사업장 차별 폐지를 위한 정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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