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해 10월29일 개인택시면허 매매업자가 지자체의 감차 정책에 불만을 품고 포항시 공무원 얼굴에 염산을 뿌렸다. 염산을 뒤집어쓴 공무원은 한쪽 눈과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가해자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의 택시정책은 10여년 전부터 줄곧 감차였다. 국토교통부는 2014년 12월 택시 가동률과 실차율(운행 택시의 탑승률) 등을 고려한 택시 사업구역별 총량제 지침에 따라 지자체의 적정 택시수를 산정해 지방정부에 택시 감차를 유도해 왔다.

최근 불거졌던 타다 논란도 거슬러 올라가면 택시 감차 정책으로부터 출발한다. 개인택시 면허를 반납하면 지방정부가 세금을 들여 이를 사들이는 보상정책을 펴 왔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는 느닷없이 택시 3천대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심야시간 택시 승차난 해소를 위해서란다. 이뿐만 아니라 심야 택시 대란을 해소하려고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만 운행하는 야간 전용 택시도 늘린단다. 하지만 서울시 택시조합은 “심야시간 택시 승차난은 택시 부족이 아니라 운행할 기사 부족 때문”이라며 효과에는 반신반의했다.

전 세계 어디를 돌아다녀도 한국만큼 심야에 사람 이동이 많은 나라는 없다. 북유럽은 밤 9시만 넘으면 걷기가 무서울 정도로 적막하다. 서울처럼 밤 12시 넘겨서도 북적이는 나라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일부 대도시 정도였다.

심야에 이동량이 많은 나라는 ‘과로 사회’다. 노동친화 도시를 지향했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N버스같이 야간 이동을 권장하는 이해하기 힘든 정책을 추진했는데 오세훈 시장이야 오죽하겠나. 생계를 위해 장시간 노동 후 귀가할 심야에 대중교통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저임금 노동자를 돕는다는 선량한 정책 의지에도 불구하고 심야 이동을 부추기는 정책은 장시간 노동 국가에서 헤어나올 길을 봉쇄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부른다.

사양길에 접어든 택시산업에서 기사들이 라이더로 대거 옮겨가는 건 당연하다. 이런 구조적 변화를 무시한 채 갑자기 택시 증차라는 뜬금없는 정책을 내놓는 정치인들의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내각 ‘이름 맞추기’ 게임은 조선일보가 단연 승자였다. 조선일보가 총리부터 각 부처 장관 지명자의 실명을 보도하면 나머지 언론이 뒤따라오는 형국이었다. 비서실 인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라는 거름망을 통해 여론의 동태를 살피려는 윤 대통령측의 의도가 읽혔다. 그런데 이 거름망은 구멍이 숭숭 뚫린 불량품이었다. 일례로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된 이시원 전 검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담당검사였는데 조선일보는 지난 6일자 6면에 ‘신설 정책조정기획관에 장성민’이란 제목의 기사 안에 이시원 비서관 임명 소식을 숨겼다. 반면 한겨레는 이날 1면에 ‘유우성 간첩 조작사건 담당 검사가 공직기강비서관’이란 제목의 기사에 이어 5면에도 ‘간첩 조작 징계받은 인물 … 검찰 내부 공정·상식에 안 맞아’라는 제목의 해설기사까지 썼다.

조선일보도 기사 본문엔 이시원 비서관이 간첩 조작에 연루돼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좌천된 전력이 있다고 언급했지만 제목 어디에도 그의 파렴치한 범죄 행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인물이 대한민국의 공직기강을 담당한다는 게 코미디 같다. 이런 식의 여론 떠보기는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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