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취임사의 키워드는 ‘자유’였다. 35번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 가치”로서 자유를 강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자유가 오직 자유만을 의미하는 공허한 자유일 것 같아 걱정된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도약과 빠른 성장은 오로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유는 곧 성장이고, 성장을 위해서 과학·기술에 투자하며 혁신을 촉진하겠다는 말같이 들린다.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 기업의 혁신을 이끌면 성장할 수 있다는,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신자유주의의 강령이 떠오른다.

자유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선 꽃필 수 없다. 당장 먹을 게 없는데 정치에 참여할 여유가 있겠는가? 반칙과 특권 그리고 무한경쟁이 팽배한 교육 현장에서,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자유롭게 도전해 보라고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평등·협력·연대와 같은 가치를 자유와 함께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더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자유를 이야기하고 싶거든, 어떻게 불평등을 완화할 것인지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소득 상위 10%가 국가 전체 소득의 절반가량을 가져가고 있다. 노인 빈곤율은 40%에 달한다.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43%다.(2021년,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추산) 비정규 노동자는 최저임금 남짓한 임금을 받으면서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오래, 더 힘들게, 더 위험하게 일하는 이가 대다수다. 그리고 산재 사고로 한 해 700여명의 노동자가 죽어 나가고 있다. 이렇게 양극화가 심각하고, 빈곤에 허덕이는 이가 넘쳐나며, 밥벌이를 할 일터가 무너졌는데 어느 틈에 무슨 여유로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자유를 이야기하고 싶거든, 어떻게 차별을 없앨 것인지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지난달 11일부터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와 미류 집행위원이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10일을 기준으로 30일이 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자유를 강조하는 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존재 그 자체를 이유로 한 차별을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존감을 지닌 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이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이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의 자유는 그가 그토록 외쳐 온 공정과 데칼코마니가 아닐까 한다.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청문회에서 자녀 특혜, 입시 비리 등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현 정부와 여당측은 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식으로 감싸기 바빴다. 법을 어기지 않은 것은 공정하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설령 불법이 없다고 해도 부모의 돈과 권력이 그대로 자식에게 세습되는 게 과연 공정한가? 성적으로 아이들을 서열화하고, 일부가 과실을 대부분 가져가는 건 또 어떤가? 윤 대통령의 공정은 자유롭게 경쟁하되 반칙만 없으면 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의 지위에 따라 다른 출발선, 경쟁 결과의 심각한 양극화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이는 인수위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도 잘 드러났다. 교육 분야 과제로 다섯 개가 제시됐는데, 교육 공공성 강화보다는 자율과 혁신, 평등·협력보다는 경쟁과 서열화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소위 ‘조국 사태’ 이후 2년이 넘게 지났다. 그간 윤 대통령은 ‘공정’을 정치적으로 소비하기만 했을 뿐 성찰하지는 않은 것 같다.

구호뿐인 국정 철학은 권력을 잡기 위한 도구는 될지언정 우리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지는 못한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번이나 강조하며 외친 ‘자유’가 더 따뜻하면 좋겠다.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와 같으면 좋겠다. 대선 기간 큰 주목을 받은 ‘한 줄 공약’처럼 아니면 말고 식의 공허한 외침은 아니길 바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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