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지난달 말 삼성전자 노사협의회가 2022년 정규직 평균 임금인상률을 9%로 결정하자, 이달 2일 삼성전자 노조 공동교섭단은 삼성전자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사측이 단체교섭권 없는 노사협의회와 임금 인상을 결정한 것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헌법 33조에 따르면 단체교섭권은 노동조합에게 있다. 근로자참여법 5조에서도 노사협의회가 회사와 협상할지라도 노조와의 교섭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은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임금인상안을 결정했고, 이를 노사협의회를 통해 발표했다. 노사협의회가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셈이다.

삼성 무노조 역사의 중심에는 노사협의회가 있다. 한편에서는 납치와 협박, 미행과 감시, 알박기노조 등을 통해 노조 결성을 방해하고, 노조가 생기면 고사시키기 위해 노사협의회를 육성했다.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에버랜드 노조와해 공작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삼성 노사전략 문건이 대표적이다.

과거 두 계열사 노동자들은 노사협의회에서 근로자 대표로 활동하다가 노조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노사협의회 틀로는 일터의 민주주의를 만들 수도, 직원들의 힘을 키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삼성전자에서 4개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은 다른 삼성 노동자들이 목숨 바쳐 이어 온 10년 싸움의 성과이자 결론인 셈이다.

한데 일부 친삼성 언론은 노조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가령 뉴스1은 “삼성전자 노조가 사측을 고발했지만 노동법은 물론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으로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뉴스1은 “법조계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며 삼성 사측 입장을 적극 옹호했지만, 대체 법조계 관계자 누구의 말을 인용한 것인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질 때에도 뉴스1은 사측을 대변하는 기사를 남발했다. 노동 감시가 의심되는 업무차량 지급에 맞서 노조가 ‘도보 투쟁’으로 대응하자 이를 비난했고,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농성을 이어 가자 잘못된 근거로 조롱했다. 당시 출입기자로서 이런 광고성 기사만 쓰던 서아무개씨는 몇 년 후 삼성 직원이 됐다.

삼성전자 내 4개 노조가 뭉친 공동교섭단의 불만은 임금 인상률 자체에 있지 않다. 훨씬 중요한 문제는 노조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사측이 노동조합을 무시하고 임금인상 결정을 밀어붙인 이유 역시 이런 노조 인정 문제와 맞닿아 있다. 노동조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권이 조금이라도 커질 때 자본가는 해당 기업 내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과 유연성을 상실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시장 불평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많은 이들이 그 화살을 노조에게 돌린다. 실제 임금격차에 대한 노동조합의 역할에 주목한 많은 연구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임금상승 효과가 궁극적으로 중소협력업체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자들의 임금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라 단정해 왔다. 결과적으로 이는 원청 대기업 노동자들과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필요 이상으로 대립적인 관계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임금상승 효과와 하청노동자들의 불이익 상관관계를 단정해 노조의 독점효과를 과도하게 조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020년 발표된 정수빈의 ‘한국 노동조합의 독점효과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원청 대기업 노조가 주변부 노동자들에 대해 적극적인 연대효과를 발휘하지 않는 것이 곧 필연적으로 손해를 끼치는 것과 같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한국 노동시장은 중심-주변 간 이동이 단절돼 있고, 그 때문에 노조 없는 다수 노동자들의 임금 정체는 노동공급의 증가가 아니라,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하도급 거래관계 자체에 있다고 봐야 한다.

2017년 발표된 황선웅의 ‘노동조합이 비조합원 임금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지역노동시장 내에서 노조조직률이 오르면 노조 없는 노동자들의 노조결성 확률도 높아지고, 노조 있는 사업장으로의 이직 확률도 상승해 노조 없는 사업장에 임금인상 압력을 가져온다. 가령 지역 내 노조조직률이 10% 상승하면, 같은 지역 비조합원의 임금도 약 5% 증가했다. 이처럼 노조의 사회적 활동은 노동친화적인 정책 도입에 있어 긍정적이고, 제도 개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비조합원 임금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따라서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삼성전자 사측이 노동조합을 정당한 협상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하고, 노동조합은 민주성과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

해마다 5월이 오면 2014년 5월17일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날 삼성은 부패한 경찰 관료들을 매수해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였던 염호석 열사의 시신을 탈취했다.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워 상처투성이 단협을 쟁취했다. 이후 노조파괴 문건을 통해 끔찍한 시신 탈취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고, 이재용 부회장은 감옥까지 다녀왔다. 2020년 5월 이재용 부회장은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국민 앞에 사과해야 했다. 지금 국민들은 그 약속 또 어길 것이냐고 묻고 있다.

삼성전자 사측은 고전적인 꼼수 메커니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기업과 노조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정규직과 협력업체 간 임금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어떻게 사회에 공헌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측이 할 수 있는 것은 노조와의 공개 대화다. 대화와 교섭은 회피하고, 여론 작업에 열중하는 것은 너무 지루하게 반복된 구태에 불과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무노조 포기 약속이 진심이었다면, 노조와 만나 삼성전자 임금체계의 불공정성과 불투명성을 어떻게 해결할지부터 의논하기 바란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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