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주사무소)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방향의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개정돼 올해 9월 시행된다. 찬반 입장 모두 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정당성을 호소한다. 그러나 개정법 아래에서도 노동사건 처리절차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검사는 여전히 특별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의 범죄수사에 대해서 종전과 같이 수사지휘권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기관들이 강고한 ‘공안적 세계관’을 공유하며 노동사건 처리에서 보여줬던 적폐는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 쌓여 있다.

검찰·경찰·고용노동부 등의 국가기관들은 대기업 총수의 배임·횡령 같은 범죄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같은 범죄에 관대했고, 노동자들의 파업에는 불법 딱지를 붙이며 노동권 행사를 무력화해 왔다. 국가기관이 생각하는 ‘공익(公益)’은 시장질서 유지와 경제성장이었다. 재벌의 범죄는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경미한 반칙 정도로 보고 가급적 형사처벌을 최소화했다. 반면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체제에 저항하는 것은 공안(公安)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행위로 보고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

고용노동 행정과 수사 분야의 폐단을 찾아 개혁하려는 취지에서 설치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9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2018년 9월 발표한 395쪽 분량의 ‘활동결과보고서’와 429쪽 분량의 ‘부록’에는 국가기관들이 노동행정과 노동사건 수사에 보여 왔던 위법부당한 권한 행사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특히 국가기관은 노조파괴 범죄에 직접 관여하는가 하면 재벌들의 불법파견 범죄에는 수사를 지연하거나 기소의 범위를 최소화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는 당시 ‘노동사건 처리에 관한 개선 권고’를 하면서 검찰이 공안적 관점을 가지고 노동사건을 바라보면서 사용자의 노동권 침해나 부당노동행위 사건보다 파업에 대해 엄격하게 법집행을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동부에 대해서는 법령 해석·적용 등에 대한 검토·자문 부서의 기능이 미비하고 검찰 수사지휘에 기대어 사건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고용노동행정개혁위는 검사의 수사지휘 대상과 절차, 방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고 근로감독관의 전문성을 제고하도록 하는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더불어 노동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노동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사법경찰관(근로감독관)의 수사권 조정에 대한 입장을 제출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활동결과보고서 363~366쪽).

고용노동행정개혁위가 지적하고자 했던 노동사건 처리에 관한 적폐는 주류 정치 무대에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 ‘수사권-기소권 분리’, 또는 ‘검수완박 반대’를 외치지만, 공안적 관점으로 노동사건을 처리하는 것에는 이해관계를 같이하는지 아무런 갈등을 빚지 않는다.

검찰개혁의 문제는 단순히 검·경 수사권 조정의 문제로만 국한될 사안이 아니다. 검사와 특별사법경찰관(근로감독관)의 권한과 관계를 어떻게 바꾸고, 관련 공무원들이 노동사건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문제도 포함해야 한다. 나아가 국가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공안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참여와 민주적 통제를 확대하는 문제도 포함해야 한다.

의심이 들기도 한다. 공안(公安)을 시장질서의 안전이 아닌 모든 일하는 사람과 시민이 안전하게 일하고 살 수 있는 상태로 보고, 공익(公益)을 경제성장이 아닌 민주주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권리를 보장하고 피해를 구제하는 형사사법절차가 존재할 수 있을까.

상상도 해 본다. 중대재해범죄 피해자와 유족들이 단순히 피해자로서 진술하거나 공판진행상황 등을 통지받는 것을 넘어 공판절차에 직접 당사자로서 참여해 증거조사신청권, 피고인 및 증인 신문권, 법관 기피신청권, 법관의 소송지휘에 대한 이의신청권, 상소권 등을 행사하는 것은 어떨까.

형사사법제도만 개혁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 다만, 형사사법제도의 개혁을 위해 논의됐던 제도들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검·경 수사권 조정에만 사회적 논의가 국한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기소대배심, 검찰심사회, 사인소추제도, 공소참여제도 등은 권력화, 관료화된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시민의 참여와 통제를 강화하는 제도들이고, 외국에서도 일부 시행되고 있다.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관점이 사라져 버린 지금의 검찰개혁 논의지형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더 많은 상상과 실천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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