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아 공인노무사(사단법인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산다. 과거의 열정, 현재의 나, 미래의 꿈.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손안의 모래알처럼 언젠가는 모두 다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는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잡으려고 하지 않는,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잡는다 해도 남는 것이 없는 수많은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 여성들은 일터에서 (혹은 일터에 진입하려는 그 순간부터) 매일 조금씩 무엇인가를 잃어버린다. 누가 가져가는 것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7조 내지 11조는 모집·채용, 임금, 복리후생, 교육·배치·승진, 정년·퇴직 및 해고에서의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 법이 고용 전 과정에 걸친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를 차별 당사자가 적절한 시기에 인지하고 사회적으로 드러내 법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특히 인사권이 ‘만능열쇠’인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더 나아가 여성들의 노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전 생애의 면면에서 적절한 자본을 제공받을 수 있었는가, 노동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요구받지는 않았는가, 직장내 성희롱과 같은 여성들의 안전한 노동환경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존재하지는 않는가와 같은 사회 시스템이나 구조적 인식론과도 마주해야 한다. 여성 모두에게 예외 없이 존재하는 촘촘한 각자의 경험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몇 줄 안 되는 조문과 건조하게 쓰인 법리가 원망스럽게 느껴지고는 한다. 성차별은 때때로 발생하는 사건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을 지지하는 토양이다. 그렇기에 노동시장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이 차별을 당사자가 인식하고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사회는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한다’고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남성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다’고 취급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이유로 한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차별적 처우 등의 노동위원회 시정신청 제도’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으로 신설됐다. 노동청에 법 위반 사실을 진정하는 것 외에 이달 19일부터 노동위원회를 통해 사업주가 차별을 적극적으로 시정하게 하고 근로자가 손해를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위에 언급한 △남녀고용평등법 7조부터 11조까지 중 어느 하나를 위반한 행위와 △직장내 성희롱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적절한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동법 14조4항, 14조의2 1항) △직장내 성희롱 사실을 신고한 것을 이유로 한 불이익 취급(동법 14조6항, 14조의2 2항)이 시정명령 대상이다.

온전한 피해의 회복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이미 일터에서 성희롱·성차별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결국 더 열악한 노동시장으로 밀려나는 경우를 부지기수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한다고 해도 이미 발생한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구제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성차별을 인식하는 것, 이를 시정신청 제도로서 드러내는 것, 쟁송 과정에서 차별의 합리적 이유가 없음을 밝혀내는 것, 적절한 보호조치를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것, 불이익 취급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 그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지레 겁이 났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우리에게 희망의 근거는 언제나 있기에.

“다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영영 드러나지 않을 줄만 알았던 것을 기어코 드러나게 하는 데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드러난 이상 시간이 얼마나 걸렸든 반드시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민경,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봄알람, 2017, 143p)

나는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거나 빼앗기지 않으면 좋겠다. 적극적으로 성차별·성희롱으로 발생한 피해를 노동위원회로 시정신청하시라. 나의 열정을 기억하고, 나의 삶을 유지하며, 나의 행복을 마음껏 상상하고 꿈꾸는 것까지.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잡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